작성일 : 23-07-03 10:59
미-중 관계에 대한 소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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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에 대한 소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지금 까지 미-중국 간에 주고 받은 舌戰에서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Biden 대통령이 중국과의 Thaw 를 언급한 후 얼마 안되어 중국의 시진핑을 Dictator 라고 부른 것이 의외로 중국 쪽에서 무책임하고 불합리한 것이라는 더 강경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June 21, 2023 Washington Post, )
Biden 이 차기 대통령 선거 유세중 한 발언을 다시 미-중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자, 중국은 더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 Blinken 의 중국 방문 문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Biden 이 언급한 중국과의 ‘Thaw’ 의 문제는 중국의 우크라이나의 평화 문제에서의 기여를 환영하고, 11월에 있을 APEC 회의에서 양국 정상의 만남을 예상하면서 건설적인 양국 관계를 언급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June 16, 2023 Washington Post ) 그러나 중국의 입장은 2022년 11월 8 일부터 대만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높아지자 시진평이 전쟁에 대한 준비를 언급했고, 그의 재 집권이 결정된 2023년 3월의 전인대회와 중앙정치위원회 등이 열렸던  3월에도 이런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 졌다.
겉으로는 이러한 최근의 미-중 관계의 악화가 Biden 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스파이 발룬에 대한 미국의 공격으로 시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후 미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Proletariat Dictatorship, 그리고 “민주적 중앙 집중제” 의 문제와 연루된 이념적 문제를 포함하면서 그 관계 악화의 내용은 근본적 문제로 비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06,27, 2023  Joseph Bosco, The Hill, US-China ‘thaw’ didn’t last long, thanks to Biden )

( The United States and China ) G2, in the making?
이 제목은 2011년 10월 11일 Richard C. Bush ( 참고로 이글을 쓴 Bush 는 4사람이나 관련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가 쓴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첫 줄에는 이 원본이 일본어로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 78세의 기억으로 되돌아 보건대 James Steinberg 가 2009년 Deputy Secretary of State 로 임명되기 전에 이와 비슷한 제목으로 글을 쓴 것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의 제목은” G-2 in the Making? “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따라서 Bush 가 이 글을 쓴 것으로 되어 있는 2011년에는 Steinberg 가 국무부를 떠나 Syracuse 대학으로 간 것으로 알려 졌다. 그 기억을 살려서 보면 Steinberg 가 쓴 글은 G2 의 형성 가능성을 논의, 언급한 것으로 보이며, 그러나 그후 그가 미국무부의 Deputy Secretary 로 임명된 이후 그는 더 이상 G2 에 관한 문제로 언급을 한 것이 없다.
또한 2011년 Bush 가 쓴 G2 in the Making ? 은 사실상 G2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미 2006년부터 미 해군은 중국의 신무기 ( Mace -미 항공모함 킬러 )를 언급하면서 그 위협성을 지적하고 있었고, 곧 이어서 중국의 GDP 가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었다.( 본인의 글, 미-중의 전쟁과 평화: 국제정치의 기본은 평화다, www.youngs-kim.org, News and Comment, 2022, 01, 30 그리고 東亞의 危機, 2022, 08, 20 참조 )
위의 Bush나 Steinberg 의 논리는 중국의 비협력적 태도, 강한 자기 주장을 강조하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 2023 )에 나온 Bosco 의 글은 중국관계 데스크에서 오래 일해온 경험자로서는 매우 극복하기 힘든 논리로 미-중의 협력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그의 글 속에 나타난 것에서 미-중의 협력은 당분간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가 제시한 Proletariat 민주주의, 그리고 Democratic Centralism 은 유럽의 예를 보면, 1917년 이후 유럽을 감싸 돌고 냉전을 거치면서 서유럽을 괴롭히던 이 계급적, 전체주의적 정치 제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 – Eurocommunism 을 통해- 을 거의 60 여년을 거친 후 에야 서유럽에서 부분적으로 벗겨 내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전에서 이따금 언급되는 유럽 사회주의의 초기적인 현상을 미국에 그려보는 순진하고 나약한 지식인들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이미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 전쟁, 월남전, 등을 통해 위의 두 명제를 겪어본 사회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도 2차 대전 이전에 군국주의적 천체주의의 횡포에 오래 시달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협력을 거부하면서 제시한 이러한 이념적 논리는 동아시아인들의 경험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에게도 공통적 경험으로 포함되어 있는 역사적 경험으로서  이념적 요소를 극복할 고민을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나누기 보다 분열의 이유 만으로 제시하는 것은 앞으로의 이 지역 에서의 발전과 협력을 부인하는, 따라서 고립과 배척의 요인 만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보편적 가구로서 UN 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강대국 간의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살길을 모색하던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국가들이 77그룹을 형성하면서 또다른 세력을 형성한 것은 결국 유네스코 같은 기구에서 미국 등 강대국들이 탈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른 바 Tiers Monde 라고도 칭했던 이들 세력의 형성은 지금도 형성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 브라질,을 포함한 국가들의 행동은 아직도 그 통합에서 중요하다.

세계질서에서의 혼란
냉전 체제가 붕괴하면서 한때는 이른바 Multi-polar 체제로 이행하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로 이 체제적 형성은 미국에게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로 되었다. 그리고 점차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른바 like-minded 국가 들이라는 집단이 형성되면서 중국을 둘러 싸는 형국의 동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급기야 제재를 동반한 압박의 형태로 자연스런 국가들 간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집단화를 통한 동맹의 형성으로 나아가기를 강요하는 국제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을 지배적이게 만들었다.
우크라이나사태는 이러한 국제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힘의 관계는 중-러의 관계가 조약적 동맹관계는 아니었으나 실제적으로 두나라 간에 체결된 우호 협력조약에서 거의 동맹에 가까운 군사적 관계를 맺고 있었던 상태에서 주도적으로 군사관계에 강화를 해오던 러시아와,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도발에 위협을 느껴오던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힘의 관계에서 중-러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으로서는 우선적으로 중-러간의 군사적 관계를 포함하여 동맹화를 저지하고 무엇보다도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기회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Russia Matter ( War Report Card, Feb, 23 2023 Kate Davidson )에 의하면 개전초기의 공격으로 러시아는 54,000 Square miles 를 우크라이나로부터 탈취하였으나, 8월부터 시작된 반격으로 우크라이나는 29,000sm 를 회복하여 러시아는 25,000 sm 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후 약간의 변경은 있으나 위미가 큰 것은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에 총 1,230 억 유로의 총지원액을 보냈으며, 이 중에 군사바는 미국이 430억 유로, Eu 가 36억 유로, 영국이 9.8억 유로, 독일이 7,3억 유로를 지원하였고, 일본은 6,2억 유로의 재정지원만 하였다.
지금까지 제시된 자료를 통해 이 전쟁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준 영향을 보면, 우선 경제적으로는 러시아는 2022년 GDP에 준 영향이 -2,1% 이고, 우크라이나에는 -30% 이며, 시민에 준 영향에서는 러시아는 전 인구의 0,6% 인 80만명이 이주 등 영향을 받은 반면, 우크라이나는 1,360만명,으로 총인구의 31%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기시설 등 능력의 40% 가 파괴된 것으로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와중에 Wagner 그룹의 Prigozhin 은 3월 부터의 공세에서 러시아 남부로부터 크리미아 반도로 이르는 지역에서 전략적 요충지인 Rostov-on-Don 시를 점령한 이후 6월 23일 Moscow 로의 진군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St. Petersburg 에서 시작된 이 용병 그룹은 초기에는 몇 천명에 불과했으나 2022년에는 그 병력이 50,0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2023년 봄부터 대반격을 언급하고 있었으나, 4월 까지 이루어 지지 않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또 Prigozhin 의 작은 반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미사일 공격에 의한 우크라이나 주요 시설에 대한 파괴가 계속 이루어 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Kherson 지역의 Khakovka 댐의 파괴 ( june 5-6 2023 ) 등이다. 쌍방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파괴책임을 미루고 있으나, 전쟁의 소강 상태에서 러시아의 미사일을 동원한 공격은 전략적인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강사태라고 하지만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은 그 공격 목표에 대한 정보와 이에 따르는 정확한 군사적 공격이 연결되어 진다는 면에서 러시아 군의 작전은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쟁의 막바지 양상 ( ? )
2006년을 전후하여 미국 내에서 G2 문제가 대두될 때 Thucydides Trap 의 논리에 따라 중국의 부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Graham Allison 은 우크라이나의 문제에서 러시아 용병의 반란에 대해 이것을 우크라이나가 이용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을 조금이라도 이용하여 지금 정체 상태에 빠져 있는 러-우 전쟁을 깨트릴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Belfer Center, Opinion, Kyiv must seize this Moment, June 26, 2023 )
그는 왜 우크라이나 군이 왜 조금 더 효율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면서, 그는 용병들의 반란이 그 변명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우크라이나 군대의 소홀성이 결국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도록 만들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2014년의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공 시, 그리고 2016-2022년 까지 우크라이나를 방치한 것이 그 선례라고 하면서, 그러면 한반도와 같은 상태로의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아난 우려를 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정책적 갭을 지적하자면, 우선 Zelensky 의 입장은 러시아에게 잃은 영토의 수복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미국은 이를 지지하면서도 실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에서 장거리 미사일, 전투기 등을 지원에서 배제, 또는 지연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 쉽게 말하자면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참여의 목적이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Biden 대통령의 태도이다.
6월 24-26일 러시아에서 Prigozhine 용병 수장의 소요가 계속 되는 가운데 Zelensky 는 Biden 과 전화 통화로 러시아의 사태, 러시아에 대한 반격의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그들의 입장의 차이에 대해 논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 젔다. Biden 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 안보, 경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을 언급하였고 미국으로부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대화를 가졌다고 Zelensky 는 언급하였디, 또한 방위협력에 대한 확대, 장거리 무기의 중요성, 그리고 앞으로 있을 NATO 정상 회의에 있어서 입장 조정, 을 협의하였다고 Zelensky는 밝혔다.( RFE/RL June 25, 2023 )
이 외에도 카나다 수상과도 대화를 나누었으나, 대체로 미국의 국무장관과 과 프랑스 등 서방 지도자들은 Putin 의 지도력의 약화를 지적했고 미국 언론들- New York Times, Washington Post 등-은 러시아의 주요 장성들이 이 봉기 움직임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세의 흐름과 변화를 앞으로의 사태 진전과 관련하여 정리하자면, 미국이 강조했던 우크라이나 전에의 참전 목적인 러시아의 약화와 중-러 동맹의 강화 가능성을 배제시키려는 시도는 별로 뚜렷한 결과를 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며, 또 셰계적인 전망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은 오히려 중국의 우크라이나전 에서의 중재 제의 등으로 그 셰계적 입장은 강조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바이든의 실각이 이어지는 경우 미국의 지도적 입장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7월 1일 늦게 외신은 Burns CIA 국장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보도하면서 그 제목을 번즈가 hears Plan for war’s endgame. 이라고 하면서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내용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도하였다. 전쟁 초기부터 주기적으로 방문해 오던 Burns 에게 우크라이나 관계자는 이 회담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로부터 수복하는 야심에 찬 전략, 그리고 년말 경에 러시아와 정전 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Zelensky 는 반격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또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군을 훈련시키는 문제, 공격 부대의 장비가 지원되는 것의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측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나 우크라이나 측은 반격이 늦어지는 문제에서 좌절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뉴스를 전한 소식통은 그 후반부에 Prigozhin의 봉기 문제를 보도하면서 미국은 이와 관련이 없다는, 그것은 러시아 국내 문제라고 강조하는 입장을 길게 늘어 놓고 있었다.
직접적 개입은 피하면서 러시아를 상대로 엉거주춤한 상태로 엄청난 군비를 퍼붓는 미국의 행태는 내부에서도 흘러나오는 American Decline 은 곧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을 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전망으로 보는 미-중경쟁의 모습은 지금의 국제적 흐름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투명한 정책을 통해 .그 질서와 안정을 도모하는 것과 그 반대로 소극적이고 불투명한 정책으로 그 국제적 안정과 평화를 깨트리는 행동은 곧 국제세계로부터 비판과 회의의 대상이 되는 선택을 통해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Nixon 의 중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미-중 국교 수립은 1979년 1월에 이루어 졌고, 이후 주로 공화당 대통령들의 중국 벙문이 Reagan ( 84 ) Ford ( 75 ), Bush sr. ( 89 ) Bush Jr ( 2001, 02, 05, 08 ) Trump 까지 계속되었고, 민주당 출신 대통령도  Clinton( 98, 2000 ), Obama (2009. 2014 )  등의 방문이 이어 졌으나 그 관계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Trump 때 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Sanction 정책의 집중적 적용의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의 관계악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미국 자체적인 평가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정책은 긴장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계속했고, 그 효율성의 문제 뿐 아니라, 중국의 기술적 성장을 늦추려는 목적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Trump 집권 시 의 시대에 강화된 Trade war 라는 양상은 인도적 견지에서의 비판은 물론 미국 자체를 고립시키는 면이 강조되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한 知人이  보내온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글은 한국 전쟁 당시 휴전 회담을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John F. Kennedy 의원 ( 민주당 ) 이 그 회담 진척과 관련하여 언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Kennedy 의원은 그 휴전이 38선 이북의 100마일을 올라간 지점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언급하고 있었다. 물론 그 는 중공이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언급한 지점은 훨씬 평양으로 접근한 것으로 중공군이 개입한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기는 랬으나 그가 한국인들을 위한 배려에서 이 말을 했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 하다. 그의 단축된 정치 생활에서 한국과 관련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는 것은 그가 매우 사려 깊은 정치인 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 JFK on Korean War Armistice Tal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