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8-17 18:03
한국의 보수주의는 건강한가? ( 속편:sequel )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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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주의는 건강한가? ( 속편:sequel ) 

지난 4월에 “ 한국의 보수주의는 건강한가?: 德目과 원칙” 題下의 책을 출간하면서 그 내용과 관 련된 article 을 쓰려고 생각하던 차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위의 책을 요약하기 보다는 이 책을 쓸 당시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의 片鱗을 정리하는 의미의 글을 쓰고자 한다. Edmond Burke ( Irish, 1729-97 ) 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에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을 발표하고 프랑스혁명을 그 당시 혁명을 주장한 내용에서 강조했던, 폭군 에 대한 저항, 자유를 위한 갈망을 강조하는 폭력성을 주목하면서 그 혁명을 칭송한 논리들에 맞 서 역사. 전통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그 혁명에서 강조된 폭력성, 급격성, 잔학성을 들어 혁명의 점진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함으로써 전 세계인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Sidney Harris ( 1917-1986 ) 는 Chicago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언론인이었는데 그는 80년대에 “ strictly personal “ 이라는 주말의 칼럼을 쓴 진보적 언론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애국주의와 민족 주의를 구분하면서, 애국자는 국가가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이고, 민족주의자는 국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자랑스러운 것으로 보는 사람으로 구분하려고 하였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언론들도 진보-보수 라는 구분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상황에 놓여 있고, 특히 언론 매체들도 진보- 보수라는 구분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상태가 되었고, 특 히 언론 매체들은 이러한 카테고리에 의한 구분 속에서 자신이 속한 매체에 충실한 글을 쓰도록 기대되고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이른바 조-중-동 vs 경-프-한 의 구분이 그 한 예일 수 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광복절 행사를 전후하여 이러한 구분이 혼란을 보이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는 “ 국가로서의 한국은 왜 무능한가? “ 제하의 칼럼이 등장 했고, 일부 진보는 물론 일부 중도적 일간들도 윤 정부를 극우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특 히 기자들과 관련하여 최근 기자협회가 발표한 것을 보면 윤대통령의 국정 수행 평가에서 총 기 자 994명 중에 79%가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고, 16.5 %가 잘하고 있다고 답한 것은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평가에 참여한 기자들을 보면, 보수성향 기자가 48.5%,의 참여를 보인반면, 진보측은 1.6%의 참여를 보인 것은 인상적이다. 이에 따라 언론인들의 정치 평론에서도 정치인들에 대한 일정한 판단에서 분명한 한계를 지키려 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인 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데 하물며 정당에 석한 정당인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은 과연 어떻다고 표현해야 할까 ? 최근에 어느 정치인이 국가 부처를 언급하면서, “북에 다가 퍼다 주는 부처” 라는 식의 표현을 쓰 는 것을 들으면서, 또 “국민 안전 도외시한 건설 산업 이권 카르텔을 깨부셔야 “라고 언급한 최고 지도자의 발표를 듣고, 새로운 정부의 과업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라 또 정책을 통한 법과 질서, 정의의 시현을 언급하기 보다 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복수처럼 들리고 때로는 저속하고 폭력적인 과격한 비난 용어를 쓰면서 공격하는 식의 오늘날의 저급한 정치의 실태를 보면, 국민들의 정권 교체를 가져온 오늘날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정치문화를 저급한 차원으로 이끌어 나가는 의도가 과연 국민의 요구나 희망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

 보수, 진보의 의미
 2000년대에 들어 진보:보수의 집권은 거의 대등한 상태에 있다고 볼 정도로 그 집권 기간에서 누 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속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미국의 보수계의 원로인 Russell Kirk 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무엇보다도, 인격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갱생 – 영혼의 내적 질서와 같은 영원한 문제와 더불어 윤리적 깨달음의 복구, 생명을 가 진 모든 것이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종교적 구속력과 관계가 있다.
 전통과 역사를 통해 인류가 지켜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관습, 양심과 자연 철학적 생존의 의미, 사회적 질서를 통해 존중되어야 하는 도덕과 윤리적 가치, 절대적 힘에 의해 인간을 지켜 주려 는 종교적 지침 등은 보수주의가 성립시켜 온 강령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자리잡은 보수: 진보의 세력들은 헤겔 左派 를 고려한 입장에서 나온 미국의 진보주의는 또끄빌이나 윌슨 등의 지식인 중심의 자유주의, 합리주의를 중심으로 한 시대적 환경, 산업화와 근대화 등에 의한 정치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에 의해 권리와 자유를 얻었다는 것보다는 사회와 전통의 뿌리에서 잘린 결과는 그 세대로 부터,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불안하고 얼굴 없는 대중이 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맑스가 프랑스혁명에서 전체주의 독재의 단초를 발견했듯이, Kirk는 Burk와는 달리 단순히 왕권으 로의 복귀가 아닌, 평등한 개인들의 자유에 따른 선택에 의한 대통령 선출이란 공화제적 제도 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진보주의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서는 가족, 공동체, 시장 교회 들을 다시 방 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Nisbet 은 강조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리스 시대부터 발달된 정 치학을 통해 정의 (sophia ) 와 지혜 ( phronesis ) 의 조화를 통한 해결을 추구하였으나, 사물의 성격의 이해에서 철학이 결여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 지배적이 되어 정치에서의 인간의 창조성이 장애를 받게 되고 따라서 헤겔의 지적에 따라 보수적 사고에 서 Providence 를 더욱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 kirk 의 주장이었다. 
Kirk 는 오늘날의 문제는 중심을 상실한 시민의 자유가 자라나는 세대에서 공공 도덕성을 앞서기 시작하였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서 도덕적 질서, 사회적 질서, 그리고 정신적 질서등 영원 한 것들의 방어에 나설 것을 강조하였다. 보수주의의 미래 최근의 만평에는 이것도 나라냐, 정치냐 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고, 이제는 일상적이 되 어버린 여론조사에서도 지도적 정당이나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가 40%를 밑도는 지지도를 보여주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수주의의 미래
최근의 만평에는 이것도 나라냐, 정치냐 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고, 이제는 일상적이 되 어버린 여론조사에서도 지도적 정당이나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가 40%를 밑도는 지지도를 보여주 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국민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태도의 배후에는 아직도 대의정치의 정부에 대한 국민에 지지가 일치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일단 정권을 담당하는 순간부터 모든 국민의 의견을 구하고 정부는 이에 응해야 한다는 민주 정치의 기본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통적 보수의 가치로 불리우는 도덕적 가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을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죄악과 모순에 찌들은 자유주의에 최근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나왔다. 
Daniel McCarthy 는 냉전 이후 미국의 힘에 의한 자유주의적 세계질서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Suicide of the West 의 의미가 부활되었다고 하고, Jonah Goldberg 는 자유주의의 보수적 입장에 서 문명의 유산을 보존하고 경제적 자유, 정치-종교적 다원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 면서, 당면한 곤경을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서야 헌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현대 자유주의에서 치명 적인 것은 개인적 자유주의라고 경고하면서, 그것을 다음 세대까지 교육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가족적 공동체는 신의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정의와 더불어 특정적 권리를 가지고 있 다고 하면서 대중주의와 민족주의의 재탄생, 그리고 정체성 정치*의 재현을 두려워 하고 있었 다.( *정체성 정치란 집단적 이익을 앞세우는 집단들의 집단화로인해 전체 국민의 이익이 무시되 는 정치를 말한다 .) 
McCarthy 는 문명의 건전성을 언급하면서 서구 문명의 퇴색을 지적하고 그 예를 출생률의 저조 를 들고 있다. 한국의 출생률 문제는 이미 세계의 수준을 압도하는 상태로 2031년 부터는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보수, 진보, 모두 이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을 구하고 있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으며, 앞선 진보 정권을 비판하는 보수 정권은 오히려 진보 정권이 썼던 외국 인력 도입의 방법을 그대로 반복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보수파들의 미래는 공동선, 공동체 논의를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Kevin Roberts는 분열을 최 소화 하고, 건전한 토론을 통한 합의점의 도출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Berkowitz는 자치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 절제를 표하고 있는 미국 헌법을 지적하면서 미래의 보수주의를 논하고 있다.
 1993년에 Peter Herzog 가 일본의 민주주의를 Pseudo democracy 라고 평가한 것은 일본의 민주 주의가 기본적으로는 갖추어져 있으나 아직 그 제도가 공고화 되어 일본 국민에게 접근하고 있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우도 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 대표적 예로 “노사정 위원회’ 를 들 수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국가들의 Conseil Economique , Social Environnement 를 모 델로 한 것이었으나 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의회제 형태로 의회를 강화하는 제도로 두었으나 한국 은 행정기구화 된 따라서 대표성이 없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민주의 원칙의 핵심인 Separation of Power에서 고통을 받고 있고, 대통령 제의 한국적 특색이었던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거나 입법부의 강화를 위한 노력은 그 실체를 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는 그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입법부를 중심으로 Reshape of Democracy ( 민주주의의 재형성 ) 을 위한 논의를 가지고 있다.
 Berkowitz 는 Patrick Deneen 의 공동선 보수주의의 미래를 실패한 자유주의 ( Liberalism Faiked, 2018 ) 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Deneen 은 지난 400년 간의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 법앞의 평 등, 자유 시장을 보호한다면서 그 의미와 공동체를 침식하였을 뿐 아니라 교육, 문화 그리고 경제 를 위독하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민주 체제의 실패, 도덕적 지식적 덕목, 그리고 정치 철학의 파산 에 의해 그 종교적 신념 체계도 동요하게 되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Marx의 주장을 순간적인 시대적 요구에 맞춘 것이라고 하면서 자유에 대한 환상으로 그의 국가를 재 형성하는 광대한 계획에 짜 맞추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가 딘순히 개인의 자유를 보호, 강조해야 할 뿐 아니라 교육을 통해 공동선에의 의도적인 개입을 통해, 덕목을 교육하고 종 교적 자유의 확대에 앞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공동선의 추구는 개인의 기본적 권한, 근 본적 자유의 보호뿐 아니라 인격을 교양하고 善한 삶의 다양한 의미를 추구하도록 해야한다고 하 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Burke 가 주장하는 좋은 정부는 제한 된 것이어야 하고 권력은 제한되고 균형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모든 정치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있다는 명제는 chaos 시대의 돌파를 위해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할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