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5-21 05:56
“뒷 談話”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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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談話

근래에 들어 카톨릭 평화 방송( TV)을 자주 보는 습관이 들어 미사를 못 본 경우에 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강론 중에도 관심이 가는 제목을 보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교황님이 한국 사회에 대해 우려하는 말씀을 한국 신부 님과 나눈 이야기도 들었다. 그 이야기 중에 왕따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교황님이 말씀하신 것이 있었는데, 교황님은 이것을  뒷 담화 라고 하셔서 이 말씀을 Naver 사전을 통해 보니, 이것을 영어로 표현 한 것이 “bitchfest” 또는 bully 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우리말로 뒷 담화, 험담, 또는 따돌림, 괴롭힘 등으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와 유사한 단어들을 보면, 뒤에서 험담하는 말, 행위 등을 의미하기도 하며, 쉽게는 따돌리고 괴롭히는 행위, 말 들이 포함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의도적인, 또는 앙심을 지닌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말과 더불어 교황님이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언급하신 후, 그것이 우려할 상황이라는 것은, 그 것이 가진 사회적 공격성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이러한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 말의 대상자들이 겪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공격적인 것이 사회적 문제성을 야기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고 기도로 풀어야 할 문제이며, 특히 청소년 들에서 이러한 행태의 파급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을 우려하셨다.

얼마 전에 국회에서 안건의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 들이 충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을 bully 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마찬가지로 언어적 폭력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회 내에서 이러한 폭력을 막기 위한 선진화법을 채택해 놓았으나. 아무런 효과나 의미를 가질 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디.

사회적 공격성

이 주제에 대한 사회심리학자들의 논의는 광범위하나 여기서는 사회적 성격의 공격성만 다루고자 한다. 우선 공격성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하자면, 타인에게 상처나 고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하며, 그 요건에는 외부에서 관찰 가능한 사회적 행동으로서, 물리적, 언어적 공격을 포함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공격대상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다루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요인을 보면, 사람들의 경우 심리 및 사회적 특성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보고 있으며, 자기 집단에의 기여, 자존심의 충족, 자기 실현의 기회 등의 사회적,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려는 것에서 비롯되며, McClelland 는 이러한 공격적인 행위는 영향력을 과시, 행사하려는 현상의 하나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성장 경험을 통해 적절히 발현되는 양상의 습득에서 이루어 진다.고 하고 있다.

Dollard 에 의하면, 공격행위를 발생시키는 사회생활 속의 요인을 보면, 이 생활 속에서 겪은 좌절의 경험이 이로 인해 야기된 심리적 충동이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격행위를 보이는 것이며 그 방법은 영화, 게임 등의 모방을 통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격행위에 대한 정서적 둔감의 효과를 통해 부정적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 효과를 통해 사회적 해악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공격적인 사람은 자존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는 데 이것은 피상적이며, 실제로는 낮은 자존심과 열등감 보상에 의한 현상이며, 흔히들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며, 남보다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환상과 착각을 깨치려는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존심이 높다고 하는 것은 그 자존심이 안정적이지 못한 취약한 구조를 가지며 자기 통제력이 결핍된 성격적 장애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람일수록 공격행위를 보이면서 보상행위를 통해 복종을 요구하면서 그것을 자발적 복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공격성의 발달

Paterson 의 연구에 의하면, 가정 내에서 부모의 공격성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자는 경향이 있다고 보며, 공격성이 높은 부모는 처벌을 위주로 가하는 경향이 높으며, 이러한 강압적 통제는 자녀들이 이 공격성을 모방하고 강화하여 받아 들이는 경향을 높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공격적으로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는 악순환을 낳게 되어 적의적 공격성을 가지게 된다고 하고 있다.

이 적의적 공개성은 고의적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에서부터 권리 침해 등으로 즐거움을 찾으려는 행동, 등을 포함한다.

이 공격성은 2-3세부터 물리적 행동으로 나타나 옆의 애를 밀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여, 3-6세에는 놀리고 흉보며, 욕하는 행동, 등의 언어 위주의 행동을 보이며, 6-7 세 에는 고의로 위해를 가하는 적대적 공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또 이 때부터 고의적으로 따돌림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사회화 과정을 통해 모방적인 것에만 치중한 경우에는 정서적 결핍과 자제력의 상실 등과 같은 부정적 사회성이 지배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격성이 사회에 어떤 결과와 영향을 주는 것이냐에 대한 인식이 결핍된 채 반복되는 경우 사회는 破片(파편)화 되며, 분열되어 더 이상 사회의 발전을 기대하거나 시도하지 못하게 되며, 사회를 역동성 있게 발전 시킬 자유와 창조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황님은 인간이 기도를 통해 용서를 받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도는 어린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이 어린아이를 도와 줄 때 만 내려다 보고 기도를 받아 들이며,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을 필요로 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자녀들에게서 부모를 떼어 놓는 것은 가족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신다.

희생물( Victim )의 필요와 따돌림 ( Bully )

선과 악을 구별하는 어떤 범주를 가진 사람들의 숫자는 매우 적지만, 정신적인 경험의 형태나, 좋고 나쁜 또는 고상하거나 천한 정신적 경험으로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목마름을 나타내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고 Kirk T.S. Elliot 의 말을 빌려 지적하고 있다.

Kirk 1981년에 미국에서 악마적 상상을 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불수 있슴을 지적한 것을 Robert Stacey 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더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로 제시하면서 모든 문학작품들이 우리 스스로 현대의 도착적 문명을 파멸로 이끌고 있슴을 지적하고 있다. Russell Kirk and the Moral Imagination, Robert Stacey, 2013, 11,6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중병은 Kirk 가 표현한 바에 의하면 도덕적 상상력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상상력이란 공동체의 복지를 위한 올바른 질서와 정신적인 올바른 질서를 깨닫는데 필요한 것이고, 이것은 신이 창조한 바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의 심오함 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게 해주는, 따라서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것은 Dante, Socrates 등의 예술가, 철학자 들로 이루어진 문화의 역사를 점점 더 망각하고 이로 인해 도덕적 상상을 퇴색시키며,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규정들로부터 벗어나고, 위험하고 검증되지 않은 도그마를 위해 진정한 질서를 붕괴시키게 이르렀다고 하고 있다.

Kirk 는 이것을 牧歌的(목가적) 상상이라고 부르면서 도덕적 상상과 대치시키고 이것은 환멸과 권태로 인해 종결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격한 제도의 채택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며,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만을 수반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이 목가적 상상은 악마적 상상으로 대체되고, 결국 환멸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법정, 청문회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남을 탓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현상은 남을 따돌리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행위를 통해 나타나며, 그 사회적 결과는 남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희생이 되는 것의 악순환을 멈추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을 따돌리고 비방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가 문명에 대해 기여한 것은 희생자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연민이었다. Rene Girard Jesus 를 예를 들어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또 희생자가 됨으로써 희생체계를 뒤집어 놓았다고 하고 있다. The rise of the Victim Bully, Donald Longenecker, August 2, 2015 Jesus 는 희생의 역할을 받아 들이면서 세계의 죄악을 뒤집어 쓴 신의 양이 기꺼이 되었다. 그는 내부로부터 희생체계를 뒤집어 놓았다고 Gerard 는 선언하고 있다. 지난 2000년을 통해 세계는 희생자가 영웅 이었 슴 을 배웠다.  다시 말하면 늘 희생물을 찾아야 하는 악순환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심리적 안전핀을 만들은 것이 되었다.

카톨릭은 미사 중에 내 탓이요 를 외치면서 회개하는 것을 그 기도의 시작으로 하고 있다. 매일의 미사에서 중요한 것은 완전하고 최종적인 희생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 신자들은 이 예식에서 신성한 신비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희생이라는 말에 당황해 할 수 도 있다. 평범한 실용주의자이면서 천박하고 상상력이 결핍된 존재로서 피를 흘리는 희생에 불안해 하고, 구원의 예식을 이해하기가 힘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로서 종교가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심오하다.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행복한 노래를 부르면서 가족들이 모여 평범한 식사를 하는 일상을 생활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신성한 신비”, 또는 성스러운 희생이 하나의 현실이 된다.

평범한 전례를 통해 희생의 신비가 제시되면 남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욕구가 줄어 들며, 여기에서 희생과 책임의 악 순환은 적절한 해결책을 발견하게 된다. “영원한 희생이 제시될 때 신비가 전개되며, “신의 양이 세상의 죄를 씻어 갈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심오한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정당과 정당 원의 관계

Jesse Norman 2015년에 나온 저서에서 Edmond Burke 에 대해 그가 잘못 평가된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그를 보수주의적 이라든가, Utilitarian , 또는 고전적 자유주의로 보는 것 등을 예로 들면서 오히려 이념적인 측면에서 보려는 이런 것이 그를 좁게 보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Burke 기 활동한 시기는Marxist 들의 시기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서 있어서, 따라서 특히 정당과 관련되어 종교적, 도덕적 요소를 거부한 맑스주의자 들의 정당의 개념은 그 정당과 관련된 역사적 성격과 특징을 부인하는 데서 그 조직과 운영에서 많은 결점을 보이고 있다.

Ian Crowel 은 현대의 정당과 대표제도의 쇄신을 얘기하면서, 현대의 자유적 개인주의에 빠진 것을 비판하고, 정당에 대한 공-사의 구분과 관련된 사상과 언급에 대한 과거와 현대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정치적 덕목과 애국적 의무에 대한 인지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슴을 지적하고, 정치적 권리와 대표제, 애국주의와 원칙 있는 반대가 헌법적 원칙 이었슴을 강조하고 있다.

Crowel Burke 의 정당에 대한 그의 사고의 발전적 개념에서 더 폭넓고 교육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정당의 개념과 대의제 정부에 대해 현대적 지침을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1790년 이후 정당의 목표의 혼란스럽고, 숙명적인 왜곡이 그 언어와 이론의 잘못된 사용과 종교의 남용을 통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깨딛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는 Burke 가 이 시기를 통해 정당체제의 과격한 재 형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자유 민주주의를 다시 왕성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경고했다고 하고 있다. 정당에 대한 풍성한 사상이 公()과 私(), 지역적인 것과 국가적인 것, 간의 역동적이고 안정적인 통로로 작용해 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당을 지도적인 일반 원칙에 대한 공동의 동의와 그 원칙을 헌법으로부터 끌어낸 대표와 대의의제도에의 충성을 통해 엮어진 개인들의 집단으로 Burke 는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정당의 올바른 기능, 곧 자유와 질서에 치명적인 무지나 기만적 혼란에 의해 침해될 수가 있다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Burke 는 그의 경험에 의해 정당을 그 운영에서 연합적, 사회적 통합적 성격으로 보고, 정당을 그 구성원들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기억, 역사, 그 자체의 정신 들과 의 결합, 곧 대화의 풍성한 질을 장려하고 사회적 통합을 용이하게 하며 따라서 분파당과 이론적 경색화로의 퇴행을 방지하는 제도로 보았다.

그는 국가의 병폐를 도덕에서 찾아야지 그 구조 영역에서 찾아서는 안된다고 하고, 성격의 결함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따라서 정당은 사회-정치적인 것 뿐 아니라 도덕적 연속선 상에서 개인적-지역적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의 특징적 덕목을 이동시켜야 하며, 紳士(신사)이면서 애국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제도적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고, 또 종교라는 것이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Burke 의 정당의 의미가 어떤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질 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어떤 정도의 연합적 성격이며,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대화가, 이미 우리를 엮어놓고 있는 우리의 의사교환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사회-도덕적 가치의 신념과 이성이 인정하는 데서 진정 융성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  

최근에 집권을 했던 정당에서 탈당을 하는 소속 국회 의원들이 그 이유를 제시하면서 진보적 성격의 정당이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는 경직된 정당으로 변화되었슴을 지적하면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범법자로 몰아 버리는 상황을 개탄하는 것을 보았다. 중앙일보, 2020, 10, 21 이병준 기자. 당내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의 기본적 속성으로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의 풍토가 원칙적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 요구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사회적 공격성을 띤 뒷 담화로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속한 사회나 민족, 그리고 국가의 바탕을 스스로 허물어 트리는 참담한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오늘날의 정당들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간에 중산층을 목표로 하면서 백화점식 정책 나열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데, 미국의 보수 정당이 이를 탈피하기 위하여, 변화를 시도하면서 자유시장 경제에서의 경쟁과 개인의 이익 추구가 지나친 것을 지적하고 이것을 공동선을 위한 공동체 중심의 사고로 변화시킬 것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The Rise of Common-Good Conservatism, Patrick M. Garry, Feb,13th 2022  여기에서는 개인뿐 아니라 민족적 능력의 완성과 좋은 방법으로도덕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며, 창조적 Vitality 와 의욕 그리고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환경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