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3-21 15:55
사릉 ( 思 陵 ): 폭력과 희생양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053  

사릉 ( 思 陵 ): 폭력과 희생양
                                                                                                                                     김 영식
지금 살고 있는 둔촌 아파트의 재 건축으로 인해 이곳 일산의 탄현동에 있는 아파트를 구한지가 제법 오래되어 이제는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에 와서 주말을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서울의 동쪽 끝에서 서북쪽 위 까지 오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옛날 리로 따지면 거의 100리가 넘는 길이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5호선 지하철에서 시작하여 경의선을 이용하는 경우 거의 1시간 40분이 소요가 되고, 차를 이용하는 경우는 외곽 순환도로를 이용하면 송추를 거쳐 1시간여가 조금 더 걸린다. 구태어 순환도로를 이용하기 보다는 옛날 길을 이용하여 오면서 이곳 특유의 맛 집을 이용해 보는 것도 훨씬 낭만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곳 탄현동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파주군 탄현면에 있는 기독교 공원 묘지에 선친의 묘를 쓴 관계로 오는 길에 여기부터 들리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이곳을 다니면서 역사 유적지를 찾는 것도 즐겨 하는 일이 되었고 덕분에 여기서 30분 거리에 있는 율곡의 서원과 화석정을 비교적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황희 정승의 묘도 오는 길에 들릴 수도 있다.    
이제 봄의 기운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바람을 받으면서, 파란 하늘과 종달새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나들이를 하기에 아주 좋은 때가 되었다.
경기 북부 지역은 왕릉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대표적인 것이 광릉, 동구릉, 서오릉 등이 있다. 어제 내가 찾은 릉은 사릉이라고 불리우는 정순왕후의 릉이었다. 사릉의 ‘사’ 가 思로 된 것은 이 릉의 주인공이 바로 조선왕조의 6번째 왕인 단종의 왕비였기 때문이다.

정순왕후
판동년 부사 여량 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 14세에 단종의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1457년 단종이 숙부였던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감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이에 따라 왕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1458년 17세 나이로 단종이 돌아가자 부인은 동대문 밖 민가에서 살았고, 단종의 누이의 시가였던 해주 정씨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 졌다.
정순왕후로 복위된 것은 1698년 숙종 24년에 단종이 복위된 후의 일이었다. 18세에 홀로 되어 82세 까지 수절을 지키다가 1521년( 중종 16년 ) 지금 남양주 지역에 대군 부인 묘로 조성되었으며, 숙종 24년에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로 됨에 따라 사릉으로 높였다.
무려 240여 년 만에 복위가 이루어 진 것이다. 세조가 그 말년에 집과 식량을 주었지만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고 한다.
이와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였다는 죄목으로 처형을 당했던 사육신들도 숙종 17년, 1691년에 복관되었으며, 이것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은의 “사육신전” 과 같은 끈질긴 주상의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양대군이 가장 두려워 하여 먼저 척결했던 김종서도 영조 22년 1746년에 복관되었고, 이미 1678년 ( 숙종 4년 ) 부터 그 후손들이 등용되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진다.
사람들의 식견의 차이에 따라 이렇게 충절을 지키며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린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 현실적인 타협주의를 권유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과연 어떤 것이 현명하고, 또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판단을 위한 준거는 위의 역사 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고 보여 진다.
어떤 사람은 세조의 찬탈을 조선 초기에 있었던 왕자의 난 과 비유하여 그 찬탈의 의미를 대수롭지 않게 보려는 예로 드는 경우도 있으나, 왕자의 난의 경우에는 태조를 도와 조선의 건국에 공을 세운 정종 ( 방과 ) 과 방원 ( 태종 ) 을 무시하고 후실의 아들이며 8번 째 아들인 방석을 태자로 한 것이 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경우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조의 찬탈은 적통을 무시한 처사로 엄청난 살육을 초래하게 한 경우이며, 결국 충절을 강조한 행태가 조선의 역사를 통해 바로 잡아 질 필요가 있는 사항으로 고려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조는 재위 13년 간 이 찬탈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를 부관 참시하는 등 ( 중종 때에 종묘에 올려짐 ), 죽을 때에도 석관을 쓰지 못하게 하고 빨리 부패하도록 목관을 쓰게 하였고, 그 아들인 의경세자는 1457년 20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고 그 妃 도 역시 단명하였다.
비록 20여 km 떨어진 곳의 광릉은 그 세조와 정희왈후의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지만, 화사한 봄 기운을 맞아 사릉의 모습은 단정하고 깨끗해 보였고 아직도 영월의 장릉에 묻혀 있는 단종을 그리워 하는 애틋함을 느낄 정도로 애잔하지만 따뜻한 기운을 내 뿜고 있었다.

권력의 無常 함
수양대군을 도와 권력을 장악하도록 했던 한명회는 사육신 등의 반 수양 세력을 척결하고, 공신으로 세도를 넓혀 갔으며, 두 딸을 왕후로 봉하도록 하여 그 위세가 30여년에 걸쳐 상당하였으나 성종 때에 압구정 의 문제로 국문을 당하였고, 연산군 때에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조선 시대의 경제적 富는 대부분 높은 신분층들이 관직의 벼슬을 획득하는 것에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 관직의 제한성은 권력적 암투와 파벌 제거의 방법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나타나게 하였다. 이런 경쟁 속에서 명분이 적은 행동일수록 더 많은 폭력이 수반될 수 밖에 없었고, 파벌간의 대립은 격화될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의 경우에도 권력적 대립이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고, 어떤 사가들은 이런 정치적 사건이 희화된 것으로 그려진 씨저( Julius Caesar )의 죽음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의 Scapegoat 의 필요성과 연결 지어 표현하고 있다. 그 당시 씨저는 민중의 지지를 받고 항구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절대자로 군림하고자 했고, 이에 맞서는 원로원들은 자기들의 위치와 권력을 지키고자 하여 씨저를 살해하게 된것이다. 

  Shakespeare는 이 사건을 劇化시켜, 씨저가 결국은 어떤 정치적 변화와 관련된 희생양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씨저가 살해된 3월 15일이면 이런 현상에 대한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는 패턴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 계기로 하려는 취지가 이런 고찰에 포함되어 있다. 씨저의 죽음은 이들 암살자의 주장에 따르면 폭군제를 막고 공화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 역사가들은 부루투스를 씨저의 주요 암살자로 만든 것은 Shakespear 이며, 실제는 Caska 가 씨저의 목을 처음 찌르고 이후 무려 23번의 단도 가격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동시에 씨저가 한 말은 “부루투스 --,” 가 아니라  “카스카, 네가 “ 였다.)
말하자면, 세조는 자기의 권력 찬탈을 위한 계획 속에서 단종을 Scapegoat 화 하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살륙과 폭력이 수반되었고, 명분으로 주장될 만한 것이 왕권의 강화 외에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 없다. 오히려 세조의 옹립을 위한 훈구파와 이에 대립되는 신진 사림파간의 대립으로 이어져 士禍가 계속 이어지는 폐단을 낳았을 뿐이다. 만약 이 시대 조선 사람들이 3.15 씨저의 패턴을 돌아 볼 계기를 가졌었다면,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셍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를 당할 수도 있다.
권력을 단순히 현실적으로 상대방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내 의사를 따르도록 그를 강제하는 능력으로 보는 한 그 사람들의 민주적 관계는 성립되기 어려우며, 그렇게 권력의 현실주의적 의미를 강조하는 한 그 사회는 Sadi-Masochism 에 젖어서 사회적 무기력과 소외현상을 초래하며, 사회적 발전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가치의 오류 및 혼란에 직면 하게 된다.

권력의 속성
여기에서는 권력의 부패적 경향을 언급하고 있는 Lord Acton 의 말이 늘 인용되고 있는데, 그는 “권력이 절대화 될수록 더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 1887년 4월 5일 )”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이렇게 오래된 문제로만 인식하지 않고 오늘날의 권력의 문제로 인식되는 측면을 고려하려는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제기된 질문은 “권력자는 더 큰 공공선을 위해 이것 ( 권력 )을 사용하는 가? 아니면 그 부패적인 영향에 굴복하고 마는 가?” 이다. 그 들이 이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을 보면, 우선 Lord Acton의 말은 부분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Leader Corruption depends on Power and Testosterone, Samuel Bendahana, et al., The Leadership Quarterly Vol. 26, Issue 2, April 2015 )
이 들은 권력 추종자들의 수와 재량적 선택의 수가 많을수록, 곧 그들의 의사를 강제할 수가 많을수록, 그 결정에 있어서 완전한 자치를 누리고자 하며, 그 지도자들은 공공선을 위한 친 사회적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나, 그들은 또한 권력을 남용하면서 반사회적 결정을 내려 국민 전체 보다는 지도자들의 소득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이들은 지도자들의 부패를 그 재량적 선택의 숫자와 연결시키면서, 이것 외에도 개별적 성향이 시간을 두고 부패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지도자의 정직성은 권력의 부패적 영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들은 정치적 지도자는, 또 이들을 견제하는 사람들은 항상 지도자가 어느 정도의 재량과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를 숙고해야 하며, 그가 집행하는 정책의 비용과 부패의 비용으로 들어가는 것을 항상 통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부패의 문제는 권력 자체와 권력자 개인의 문제로 귀착되며, 또 권력을 도덕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을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권력에의 유혹을 차단하는 것을 제의하고 있다.

맺으며,
권력의 속성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는 권력의 자기 확장, 지속성, 등이 있다. 권력은 한번 맛을 들이면, 다시 말해서 권력의 현실주의적 속성에서 나오는 것에 쾌감을 느끼면, 그것을 쉽게 놓으려고 하지 않고, 항구화 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권력의 획득에서 조금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고, 그 수단 방법을 가리지를 않는다. 적어도 민주국가라고 한다면, 이러한 권력의 장악을 위한 민주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에도 그 나라의 윤리적 도덕적 규범에 따른 과정적 진행이 요구되고 있고 이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성향이 좌우하게 된다.
그 권력에의 욕구가 크고, 그 경쟁이 치열할 수록 그 정치적 상호 작용을 위한 매개 수단들이 동원, 이용되는 과정에서 그 사회 저변의 윤리적, 도덕적 수준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언어에 의한 테러가 그 중의 하나다. 쉽게 말하자면 말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 폭력과 구분되는 점에서 가볍게 이용될 수 장점을 가졌으나,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 윤리적, 정치적 의미는 크다. 우리는 흔히 막말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이것을 사회적으로 보려는 사람들은 단순하게 보지는 않는다.
최근에 이런 언어에 의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을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그것이 정치인들 가운데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은 문제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느 출마자에게 한 국회의원이 “ 괜히 저를 나쁜 놈 만들지 마시고, ---- 말 년에 험하게 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여생을 사는 게 좋다” 고 발언한 것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최근 국회는 물론 정당들도 각각 그 윤리규정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실천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느냐는 점에서 아쉽다.
Patricia Evans 의 지적에 따르면, 이러한 Verbal Abuser는 자기의 우월적 지위를 얻으려는 욕구에서 다른 사람의 욕구, 행복, 감정, 사고 등에 대해 공격적 언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의 자기 존경심도 없으면서 분노를 가지고 자신의 불안정, 걱정을 표출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시도하면서 그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John F. Kennedy 대통령은 “ 용기 있는 사람들 “ ( Profiles in Courage, 1957 퓰리쳐상 수상 ) 에서 미국 의회를 이끌고 발전시킨 상원의원을 소개 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서 비판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옮긴 사람들을 극찬하고 있다. 남을 비방하고 괴롭히는 것보다는 평화롭게 사는 것의 의미를 깨댣고 Humor, Joke 를 통한 민주적, 사회 화합적 행태가 지배하는 고급 문화를 진작시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양심, 전통적 관례에도 더 어울리는 것이며, 이것이 사회적 기풍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