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步와 家族
김영식
얼마 전에 순수함을 앞세운 고령의 전직 장관이자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세계적 명예를 누려왔던 傑物이 국내에서 그
정치적 포부를 밝히고 활동을 시작한지 20여일 만에 그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발표를 하는 일이 있었다.
한국의 정치 풍토, 또는 토양은 이처럼 척박하고 배타적인가? 그가 한국에서 성장하고 비록 10년간 외국 생활을 했지만, 그가 기회 있을 때 마다 고국에의 기여를 약속해왔다는 것을 기억을 한다면 누구도 그의 자유 의지를 거부할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그가 밝힌 그의 순수함은 지난 30년간 이 살벌한 한국 정치 풍토에서
잔뼈가 굵어 온 진보적 정치파 들에게 일방적으로 매도 당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나 연약했다.
물론 정치적 일정을 염두에 둔다면 촉박한 감은 있었겠지만 그 등장을 위한 준비,
한국 정치 풍토에 대한 고려, 그리고 재빠른 퇴장, 그야
말로 속전 속결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를 둘러싼 보수-진보의 논란을 개괄해 보고 그런 이념적인
경쟁을 내 세운 한국 정치의 흐름이 과연 그 이념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어느 여당 지도자가 던진 “ 보수냐 진보냐 “ 라는 질문, 그리고 그 본인이 언급한 이른바 “ 진보적 보수주의 “ 라는 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전개해 보고자 한다.
보수-진보: 현상적 특징
이미 보수, 진보 라는 단어는 너무나 우리에게 밀착되어 있어 그 의미를
새삼스럽게 밝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진부한 접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가 추구해온
근대화 과정은 그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계몽적 접근을 통해 근대적 요소를 사회적으로 천착시키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또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급격하게 다가온 까닭에 서유럽에서 이루어진 근대적 합리주의, 개인주의 등을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독재, 군사정권의 압제를 철폐하는 과정으로 독주해 나온 결과를 보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게 서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진보적 보수주의” 라는
말은 영국의 Benjamin Disraeli 가 보수당의 당수로서 1867년
남자 노동자들의 선거권 확대를 위한 정책을 통해 노동계층에게 접근하면서 사회적으로 분열이 악화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계층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이 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였고, 특히 노동계약이 그 위반 시에 노동자를 형사범죄로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민사법에 의한 해결을 추진하면서, 당시에 이에 반대되는 견해를 가졌던 자유당을 이기적인 개인주의자로 공격을 했다.
그는 One-Nation Community, One Nationism 을
내세워 사회적 안정을 위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1884년
Fabian Society 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어서
Sidney Webb 을 통한 노동조합법의 제정 노력을 통해 영국에서의 점진적이고 개혁적인 변화를 추구하였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교육의 의미를 강조하여, London School of
Economics 창설, 그리고 University of
London을 개혁하였다. 1906년의 노동당의 창당에 이르기 까지, 유럽대륙이 Marxism 의 먹구름에 영향을 받는 동안 영국에서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영국의 안정적 번영의 바탕이 되었다.
유럽대륙은 진보, 보수의 개념보다는 좌파-우파에 의한 정책적 차이를 강조해 오고 있고,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우파의 대통령 출마자인 Francois Fillon 은 서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앞세우면서, 기업, 노동자 그리고 국가간의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 2022년까지 정년을 65세로 확대하는 문제, 노동자계층의 기업결정과정에서의 참여 확대, 노동시간에 대한 노-사 협의에 의한 결정, 실업 수당을 본봉의 75%까지 지급할 것, 등을 내걸었고 일자리 30만개의 창출도 제안하고 있다.
프랑스에서의 진보적 ( Progressive ) 정당은 상황에 따라
공산당 ( 2008년 ), 또는 사회당의 분파( 2010년 )로서 존재해 왔고, 그
독립적 의미에서 정치적 정당을 표방한 것은 2009년 진보통합 운동 (
MUP ) 으로 변형한 후였다. 그 개혁을 위한 주축도 사회정의, 개인의 자유 방어, 사회, 시민
민주주의의 심오화, 평화적 세계적 연대를 위한 투쟁 등을 내세웠으나,
중도 좌파의 입장에서 인간의 존엄성, 세계 평화 를 강조하는 개혁의 입장에 있으며 현재는
사회당과의 연합을 통해 의회에 1명의 대표를 진출시키고 있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공화당의 Trump도 백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선거 전략, 그리고 일자리 창출의 문제 등으로 그 성공적인 전략을 구성한 것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의 정책적 추세에서 보면 좌-우, 또는 보수-진보의 정책적 수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오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주의의 뿌리
오늘날 진보주의를 표방한 대표적 정당은 미국의 민주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출발을 7대 대통령인 Jackson 으로 부터 민주당의 출현에서
찾고 있다. Jackson 은 선거권의 확대에 즈음하여, 강한
입장에 있었던 의회에 대립하여, 행정권을 강화하였고, 엘리트에
의한 Washington의 점거를 서민들의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해 미국 가치의 재형성을 주장하였다.
미국 정치사가 들은 미국의 헌법 기초자들에 의한 정부의 기초가 잘 잡혀있었던 나라였지만 이러한 건전한 기초가
부패하게 된 사건으로 Lincoln 대통령에 의한 중앙집중적 정부, 제왕적
대통령제의 등장을 내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인 성격의 병폐를 이들은 19세기 말, 그리고 20세기초에 있었던 Progressivism운동
에 돌리면서, 학계,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이
미국 엘리트 지식층에 의해 해외 ( 주로 독일의 Hegel, Kant
의 사상적 영향 )로부터 도입된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 진보파들이 미국 헌법 기초자들의 고전적 자유주의 철학을 경시하고, 헌법을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진보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세계를 바라보는 헤겔 좌파적 방법에 대한 평가에서 나온 것이었다. Patrick Deneen
은 이미 1830년대애 Toqueville 의
Democracy in America 에 의해 진보적 요소가 들어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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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by 에 의하면 미국 진보주의는 미국 사회의
근대화, 산업화로부터 오는 문제, 그에 따르는 사상 등을
표현하는 정치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경제 불평등,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독점 기업 등에 의해 질식되어 가는 진보의 문제를, 세계대전, 경제적 대 공황을 거치면서 정부가 이 변화를 이끌어 가는 적극적 도구로 등장하게 하였다.
P. Deneen 은
Toqueville 이 진보주의의 등장이 자유주의적 전통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 아니고,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Toqueville 은 개인주의라는 것이 대체로 오랫동안 변함없고 고정적인 문화적, 세대적,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가족적 환경에 뿌리 밖고 있는 경험에서 나오는
자아 ( Self ) 의 새로운 경험 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자유민주주의는 사회계약적 전통에서 비롯된 개인에
대한 견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 상태로 규정되며, 특히 주어진 정체성, 물려 받은 역할이나 구성적인 연대 관계가 전혀
없는 인간인 것이다. 이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한때 농부에서 부터 왕까지 묶어 놓았던 “체인” 이 박살되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그 자신의 마음속의 고독으로
던져 넣어 졌다고 하고 있다.
Toqueville 이
인정하듯이 Locke 의 개인은 Rousseau 의 자연상태
와 Marx 의 소외된 인간을 낳은 산파의 역할을 했다. 인간은
그의 Self 의 완전성을 달성하기 위해 그보다 한 층 높은 “인류” 에로의 소속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의 개선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지위나 입장을 벗어난 새롭고 보편적인 완전성에의 열정에 휩쌓여 모든 인류의 민주적 평등성을 높이는 데 신념을 두고 사회를 끊임없이 개선하는데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모든 중간적 집단과 사회적 구성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Toqueville 이 표현한 “후견적 국가 “ – 곧 새로운 형태의 폭군제, 민주적 독재 체재 –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Tocqueville 로부터
영향을 받은 Robert Nisbet 는 인간이 사회적 공동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자유와 권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독과 악마적인 공포와 열정에만 종속되는 것만 얻을 것이고, 사회와 전통의
뿌리에서 잘린 결과는 그 세대로부터 그리고 그 유산과 동료로부터 고립되어 불안한, 얼굴 없는 대중만을
낳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주의의 이러한 경사를 막기 위해서는 가족, 공동체, 시장, 교회
등을 다시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Robert Nisbet, The Quest for
Community )
Nisbet 는 진보주의에
대한 다양한 시대적 접근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진보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5가지 전제는 공통적이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1) 과거의 가치, 2) 서구 문명의 숭고함, 3) 경제적, 기술적 성장의 가치, 4) 신념보다는 이성에 의해 획득한 과학적, 학문적 지식, 5) 지구에서의 삶의 본질적 중요성과 그 가치 등이다.
맺는 말,
어느 날 지하철을 타다가 붙어 있는 문구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말이 있었고 그 밑에는 “왜 젊은 이 들이 사서 고생을 해야
합니까? “ 라는 말이 붙어 있었고, 또 그 옆에는 젊은
이에게 “힘을 내라”, 고 만 하지 말고 “힘을 주라”,고 쓴 글을 보았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힘을 내라 이런 말들은 젊은 이 들에게 어른 들이 흔하게 쓰는 격려의 말로 알려져 있다.
얼마 있다가 어느 진보적 지방자치단체에서 취업을 위해 청년을
지원해 주는 수당을 60만원씩 지급한다는 말이 나왔고, 이에
맞서서 중앙 정부도 70만원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 졌다.
젊은 이 들에게 말로 만의 격려가 아니라 실질적인 재물을 주는
것이 더 젊은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어느 가정에서 취업을 위해 애쓰는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격려는 이 물질적 지원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가정을 감싸고
보호해 주는 사랑의 유대는 상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 야당의 대통령 후보 지망자들 간에 설전이 벌어 졌는데, 그 발단은 진보적 후보들 간에 탄핵 당한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대통령도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하시려고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자 같은 진보적 입장의 다른 후보가 이 발언 속에 분노가 빠져 있다는 지적을 하자, 그 분노는 정의의 출발 이지만 그 정의의 마무리는 사랑이다 라는 말로 응수를 했다.
그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응수는
되었지만 그 설전의 출발이 되었던 “선의” 와 “사랑” 은 무슨 관계인가?
사랑에 대해서는 성경, 등
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고, 또 연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쓰이는 말이지만 공통적으로 함의가 되어야 할 것이
있다. 어원적인 의미에서 사랑과 꼭 연결시켜야 할 단어는 Esteem
이다. 가정에서의 사랑에서 가장 최상의 의미로 사용되는 사랑은 이러한 Esteem 이 포함되는 것이며, 가족간의 관계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정의 돈독한 유대 관계는 사회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
외형적으로는 가정의 유대가 사랑이라는 매개 변수에 의해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사랑이 Esteem 의 의미가 결여된 것일 경우, 내부적인 폭력, 심한 경우 존속 학대, 살인 등으로 가족이 파괴되어 나가는 것을 누구도 저지하려는 의사나 용기를 개입시킬 수 없는 사회적 악의 상황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진보주의의 핵심은 말 그대로 일보 앞을 나아가는 것이다. 그 기본에 충실 한다면, 인간이 이루어 놓은 과학, 기술 경제적 발전을 사회적 발전, 인간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려는, 야만성을 벗어나려는 문명을 향한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막연한 Utopia 의 추구가 아니라 경험적 지식을 사회에 적용하려는 Idea of Progress 이며, 반대로 너무 근시안적인 Myopia 를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정치 풍토,
토양의 원래의 의미는 그것을 처음 사용한 서구에서는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을
처음 사용한 Joseph Granvill ( 1661 ) 은 이 개념을 일반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총체적 분위기, 실제적 의견으로 제시하면서 이것은 균형이 잡힌 고정된 것이라기 보다는, 변화 중에 있는 분위기, 의견을 서술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Public opinion 과 동일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것의 다양성에 더 의미를 두고 있다.
50대의 진보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의, 표 (票) 만을 의식한, 亂脈 狀況을 안타깝게 지켜 보면서
좀 더 사려 깊고, 신중한 언행을 주문한다면 너무 객 적은 소리라고 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