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29 18:12
보수가 바로 서야 진보가 선명해 진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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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가 바로 서야 진보가 선명해 진다.

우리의 오랜 속담 중에 못난 놈이 연장 탓 한다.” 는 말이 있다. 최근 한국의 정국이 혼란해 지자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각 책임제로 바꾸어야 한다.” 는 상투적인 제의가 다시 등장했다.

오늘의 정치적 혼란의 원인이 결국 제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 에로 돌려져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처방으로 나온 것 같다.

우리 나라가 민주주의의 공고화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가 선진국과 같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대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 단계로 따지면 우리는 제도적 민주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Peter Herzog 교수 ( Syracuse ) 가 일본의 민주주의를 Pseudo-Democracy ( 가짜 민주주의 )라고 하는 이유는, 일본에도 민주적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일본 국민 전체의 정치적 생활에 이것이 결코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도를 이식한지 70년이 되었지만 민주적인 가치가 얼마나 우리나라 국민의 행태와 사고에서 자리잡고 있는 가를 살펴 보면, 결국 제도라는 것은 일반 국민의 관습과 가치관을 반영해서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논의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우연하게 미국의 논문들을 보다가 눈에 확 뜨이는 제목을 발견했다. 그것은 미국의 선조들이 대통령제를 너무 강력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 라는 제하에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살펴 본 글이었다. 미국은 1787년에 헌법을 채택한 이래 대통령제를 유지해 왔고, 물론 미국 대통령 중에도 Buchanan, Harding, Andrew Johnson 등의 무능한 대통령이 있었으나 내각 책임제로의 변화를 주장한 적은 없었다. 이 글을 쓴 Birzer 교수는 그 문제점을 삼권의 분리가 명확한 미국 정치 제도에서 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서 찾았다.

탄핵?

자유 민주 국가의 헌법에서 탄핵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유일한 제재의 방법으로 명기되어 있다. 물론 그 조항의 적용의 대상이나 조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그 조항을 적용하는 사례가 많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 존재의 의미마저 부인할 필요는 없다.

현재로서는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적용의 가능성이  점점 더 확실해 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가 공고화되었다고 보는 상태에서,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서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가 빈번하게 제기되는 것은 국민 주권 인식의 발전의 측면에서, 또 최고의 책무를 지닌 대통령의 능력과 그 활동에 대한 높은 기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으나, 그것이 정쟁의 도구가 되는 것은, 고위 선출 공무원에 대한 소환권에서 보는 것처럼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여기서는 탄핵의 성사 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그 문제는 검찰, 특검, 그리고 국회와 헌법 재판소에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조인들이 책임 있고,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탄핵과 관련하여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매스콤에서 보도하는 대로 이 과정이 최장 8개월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달 초에 국회에서의 합의가 이루어 져 헌법 재판소로 넘어가면 최장 6개월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탄핵 심판의 경우,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서 국회를 거친 이 문제가 헌법재판소에 넘어가 결정이 난 것이 514일로, 2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최초에 탄핵 논의가 1월부터 시작되고 5월에 기각이 결정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직무정지를 포함한 정부 마비가 적어도 6개월간 계속되었다.

2000년 대에 들어와서 한국의 경제성장율은 2010년까지 평균 6.7 %였으나, 2004년의 성장율은 4.8%로 가장 낮았다. 2004년의 탄핵 사태는 대외 무역에서도 큰 영향을 주어서 수출은 2004년 보다는 2005년에 12.0의 성장율을 기록해, 그 전해의 31.0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수입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으며, 노무현 정부는 집권 기간 동안 그 전의 수출 성장율을 회복하지 못했고, 집권 마지막 해에는 무역 수지 에서 적자를 기록하였다. GNP의 성장도 가장 낮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전해( 2003) 까지 전자 정부의 형성에서 선두를 달리던 한국은 그 선두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게 뺏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상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10월 말부터 시작하여 12월 초에 탄핵 의결을 가능케 한다고 해도 거의 10개월에 가까운 권력 공백 상태가 예상되는 상황은 노무현 집권 시와 비교하여 더 심각한 결과가 닥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의 경우 그 사유가 선거법에 관련된 것이 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대통령의 능력과 Image 에 관한 것이 결부되어 있는 것인 만큼 그 파급 영향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이 기간을 될 수 있는 한 단축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에 대한 평가

Kissinger 는 국가 지도자들이 정책 선택을 할 때 주로 1) 지도자로의 상승 기간에 겪은 경험, 2) 그들이 작동하는 권력 구조, 3)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들 등의 요인들에 의해 결정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는 현대에 들어서서 지도자들의 경력 경험이 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영국과 독일은 의회 및 정당에서의 경험, 미국에서는 엘리트 중심의 관료적, 실용적 경험이 지배적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Domestic Structure and Foreign Policy )  대중 선동의 유혹을 꺽고, 사회의 공통적 가치들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높은 정도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 내는, 지도자로서 좋은 자질을 갖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자기 주장적 독단성을 거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자질이 떨어지는 지도자 일수록, 독단성, 오만성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한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간의 관계는 외신에서도 미국의 NYT, Washington Post, WSJ 그리고 영국의  The Guardian -  10월 말부터 다루어 지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이 표현한, 또는 사용한 단어들을 열거 하자면, 최순실을  the daughter of Shamanic leader, girl Rasputin, , Rasputin-like friend of Park, 등으로 주로 샤마니즘과 연결 하거나,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 때 국정을 농락한 괴승 Rasputin과 비유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이제는 Wikipedia 도 단독 항목을 만들어 “2016 한국 의 정치 스캔들 소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미국의 논평가 Bruce Klingner ( Hertitage ) 의 글에서는 Crippled President Park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검찰이 언급하고 있는 범죄적인 행태를 차치하고 라도 이제는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국내,외적으로 통하는 것은 부정적이고 부패적인 이미지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밝혀지는 사실들, 특히 청와대의 의료 약품과 관련된 것, 그 측근들의 발언 등에서 나타나는 것들은 대통령으로서의 판단력 등을 포함하여 그 신체적 건강의 문제가 무시하지 못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최근에 대통령의 명예퇴진, 하야 등, 을 주장하고, 그에게 애국을 호소하는 언론들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원로 들이 이 난국을 돌파할 로드 맾을 제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가 따르도록 하는 것, 또는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자신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가질 수 있는 오만함을 버리도록 하는 방법일 것이다.

보수 정당, 새누리당

보수당으로서 제시한 당헌, 당규, 그리고 윤리강령은 다른 나라들의 보수당들이 제시한 것들과 비교했을 때, 어딘가 한 면이 텅 빈, 아니면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번 미국의 공화당을 보수당으로서 제시한 것을 살펴본 것은 새누리당을 검토하기 위한 전제였었다..(동숭 칼럼, No. 403, 11월 15일자 )

예를 들어서 보수당들이 일반적, 또는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들을 요약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제한 ( 작은 ) 정부다. 정부학을 가르칠 때 제일 강조하는 것이 정부라는 용어의 원어인 Gouverner 는 배의 키를 잡는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정부는 단지 방향 만을 잡을 뿐이지 배가 앞으로 나가는 힘은 국민들의 몫이란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시민 ( 개인 )의 자유 이고 세번째로 중요한 것이 이들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시장경제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축적한 사유재산의 체제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 국가 안보, 등으로 이어 진다.

이러한 보수당들의 원칙적, 또는 고전적 전제 위에서 현대 사회가 노정하는 빈-부격차의 문제, 복지의 문제 등이 이들 보수당의 도전적 과제들로 제시되며, 앞의 논문에서 언급한 대로 보수당들도 이런 현실적, 도전적 과제를 실용적이면서 점증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적절성, 다양성을 받아 들이는 적응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보수주의자들의 이런 현실적 변화에서도 변할 수 없는 것은 자유의 문제가 항상 평등의 문제에 앞서야 한다는 전제다. 서구의 국가들이 제시하는 성장을 통한 분배의 확대가 중요성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가 지니는 중요성은 이러한 시민의 자유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서 그 의미가 크며,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Reinvention  ( 재 창조 )이라는 ( G. Osmond ) 말은 사회적 시민적요소의 새로운 역할, 또는 기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이제는 정부만이 정치 등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민적 요소가 정부와 같이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가 강조될 때 반드시 뒤따르는 것은 그 구성의 기반인 가족이다. 사회의 기본 구성으로서 가족은 그 자체의 윤리적 생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의 관계적 안녕은 사회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

미국 보수주의의 출발은 개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한 초월적 질서, 대부분 이것은 기독교적 윤리로 집약되지만, God, 또는 자연법적 사상에서 비롯된 선한 양심을 기반으로 한 그 질서가 사회적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새 누리당의 당규, 또 윤리강령은 이런 알맹이가 빠진 채, 보수, 도덕, 윤리라는 용어 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눈에 띠는 것은 그 윤리강령에 경로 효친의 미풍양속을 고취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보수주의가 강조하는 전통적 관습에 해당될 수 있다. 진보의 공세에 약화될 필요가 없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진보주의에서 출발한 집단은 없다. 집단적 생활의 출발에 안정된 관습이 자리잡기 마련이고 그것이 보수로서 기능하고 여기에 진보적인 견해가 비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집권당으로서 새누리당이  그 당규, 윤리강령을 통해 최순실 사태에서 한 역할이 무엇인가?

맺으며,

진보는 승리를 하는 순간 보수가 되어 버린다. 이 순환은 역사적이다. Kirk 가 진보,보수를 이념으로 보지말고 성향, 태도 등으로 볼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Birzer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보수주의는 대중적 인간과 대중사회에 대해 일치를 강조해 왔던 것에 대한 항의로 점차 고개를 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보수주의의 재 등장은 진정한 다양성과 인간의 품위를 인정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당들은 진보를 포함하여 새로운 구축을 시도하여 왔다. 그 결과는 자유 민주주의를 재 활성화 시킬 수도 있고, 또 그것을 매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Birzer 는 주장한다. 그 중에 대통령제는 국민들의 희망, , 을 실현시켜 줄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들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제에 대한 논의가 , 그 한계와 목표를 포함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Kirk 는 그 마지막 연설에서 ( 1992 ) 공화당이 20세기에 국내,외 정책에서 행동할 때 중요한  것이 신중 ( Prudence )과 자제 ( Restraint ) 임을 강조하면서, Burke 가 위대한 보수주의자가 되게 한 것은 진정한 정치의 원칙들을 확대된 도덕성의 원칙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정치학을 윤리학의 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폭력에 의해 인간의 모든 의무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을 표출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것을 강조하였다. 결국 2세기가 지난 지금, Hayek 에 의해 자유와 책임의 불가분성이 인정되기 이르렀고, Ordered Liberty 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