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4 12:42
Kissinger 가 본 냉전, 그리고 한반도의 現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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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inger 가 본 냉전, 그리고 한반도의 現狀
 김영식    | 2015·03·13 09:05 | VOTE : 102 |
Henry Kissinger 박사가 작년 11월 4일,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에서 있었던 대담에서 ‘냉전’을 회고 했다. 재치있게 실례도 들어 가면서 그가 개입되어 있었던 70년간의 국제정치 문제를 ‘냉전의 시작과 끝’ 이라는 주제로 정책적 역할을 담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정리를 해 주었다.

냉전 속의 미-소관계
그의 국제정치적 감각의 첫 경험은 그가 1945년 2차대전에 미군 84 보병 사단의 중사로 참전하여 엘베 강변에서 소련의 코사크 사단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를 했던 그는 소련 병사들과의 첫 대면에서 그들을 적대적 조력자로 대하도록 지시를 받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이 영구한 동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도 있었다.
그 조우의 연장적 상황에서 그는 교수의 입장으로 돌아와 냉전은 불가피 ( Inevitable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냉전을 이념적인 것과 연결시키려는 Haass (CFR 회장) 의 질문에 Kissinger 박사는 냉전의 형성을 두 사회의 고유한 성격, 그리고 소련이 던지는 지정학적인 위협- Stalin 의 국제체제 성격에 대한 발언 등- 에 따라 미국은 시간이 좀 걸렸지만 냉전으로 들어가는 외교 정책의 형성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소련도 전후 복구를 위해 공산주의 논리에 따른 사회적 갱생을 위해 냉전이 필요했다고 보고 있다.
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핵 무기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특히 유럽에서는 핵무기가 결과적으로 냉전적 상황을 가속화 시켰다고 보고 있으나 Kissinger 박사는 핵 무기가 없었어도 미-소 간의 경쟁은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Kissinger 박사의 회고가 소련의 붕괴라는 결과와 관련하여 냉전 과정을 통해 미-소 관계를 관리해 왔다는 그의 발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소련과의 군비통제 논의에서 미국은 소련인들에게 미국의 전략 성격에 대한 생각을 교육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였으며, 군비를 비롯한 다양한 협정을 국제체제화하는 방법을 통해 소련을 묶어 두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또한 소련에게 국가 이익의 추구를 원한다면 미국과의 절충이 필요하고, 또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구주안보협력체제를 만들고 그 내부에 Basket III ( 인권관계 조항 )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국제법적 기초에서 소련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가 냉전을 통해 상대했던, Kossygin, Podgorny, Gromyko 등의 소련 지도자들은 우선 공산주의 이념에 고정되어 있었고, Breznev 는 Gorbachev 의 선배격의 입장에 있었으나 개인 건강 문제로 꿰뚫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은 미국과 갈등을 피하고 체제 유지와 긴장완화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냉전에서 미국이 소련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Détente, 중국의 등장, 그리고 미사일 방어체제의 도입 이었다. 먼저 중국과의 Rapprochement은 소련의 지정학적 위협을 매개로 한 미-소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게 하면서, 그 관계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체계로 이끌었고, 소련은 Détente 와 미사일 방어체계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그에 따른 수정을 시도 했으나 이미 소련은 냉전에 지쳐 있었고, 그 자체 체제의 부작동성 ( Unworkable ) 을 깨달음에 따라 그 수정은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는 것이 Kissinger 박사의 결론이다.
그는 Gorbachev의 의도를 그 체제의 강화, 부활을 시도했으나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 결과는 그가 의도했던 것이 아닌, 따라서 그 역사적 충격이 매우 컷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냉전적 한반도
Kissinger 의 대담 이외에 또 다른 session 이 ‘냉전의 기원’에 대한 주제로 열렸는데, 여기에는 Zelikow, Leffler, Costigliola, 등 역사학자들이 발표를 하였는데, 이들은 1917년 볼쉐비크 혁명을 그 기원으로 보거나, 1945년 루즈벨트 사망 이후 미-소 관계, 그리고 부분적인 것으로 Paris Commune ( 1871 ) 을 그 기원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이들의 공통점은 종전과 달리 어느 하나를 그 기원으로 보지 않고 복합적인 요인들로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념적인 의미가 강조되는 측면에서 사회조직의 방법에서의 차이가 이런 냉전을 낳았다고 할 수 있으며 상황적인 요소들이 이 냉전의 형성에 기여했다는데도 의견이 모아 졌으나, 이들 역사가들은 유추만으로 결론을 내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의미가 있다면 따라야 할 지침으로서 유추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못하다는 결론만 내렸다.      
정치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가? 현실 문제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던 정치학자들의 입장은 한층 분명하고 뚜렷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Craig Calhoon 은 사회백과 사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 공산주의자들의 정부 전복, 등이 냉전의 이유라고 제시하고 있고, 이 견해는 냉전을 설명하는 정통주의적 이론으로서 50년대부터 미국의 공식적 견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1947년의 미국의 National Security Act와 이에 의거한 CIA 등의 설립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960년대에 수정주의 이론이 나오고, 냉전을 누구의 책임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대립되는 두 체제간의 신념체계에서 비롯된 상호 간의 의심, 적대주의 조장 등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Gaddis 의 주장이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그도 마지막에는 소련에게 더 책임이 있다고 하고 있다.
이들의 논의에서는 동아시아에서는 아직도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는 입장에서 냉전의 종식을 다루는 유럽의 문제에 그 초점을 두고 있으며, 다만 Zelikow 만이 동아시아의 상황이 유럽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 있었다. Raymond Aron 을 포함한 이들의 결론은 냉전은 불가피했으나 그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난 후 전쟁은 ( 핵전쟁을 포함하여 ) 불가능 한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 상황은 반드시 정통적 이론을 따르지 않더라도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북측의 주장이 잘 말해주고 있다. 현재의 냉전적 상황에서 한국에 북한을 지지, 추종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은 북한이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태인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3월 5일에 인권 문제, 군축문제를 놓고 제네바에서 벌어진 남-북의 설전은 그 대립의 날카로움을 증명하는 것처럼 북한은 핵 무기에 의한 위협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한국 측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제형사 법정에 회부하는 문제를 거론하였다.,  
이러한 첨예한 대립 속에서 해프닝도 있었다. 그것은 ‘전쟁 연습’ 반대를 외친 김기종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가한 테러를 북한이 옹호하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의 조평통은 김기종의 행위를 테러로 본다면, 이등박문을 처형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도 일본 반동들이 모독하듯이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묘한 비유를 하였다. 이것은 John Stuart Mill 의 표현에 따르면 “False Analogy” 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비유를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이 주장은 한국 정부나 국민을 일본 반동들과 같은 격에 놓은 것이 된다. Mill 이 설명하는 것에 의하면, 비유를 통해 논쟁을 하다가 잘못된 경우를 예로 삼은 것이다.
위의 냉전에 관한 역사학자들의 논의에서 역사적 ‘비유의 오류’에서 냉전적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은 냉전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재 음미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학자 들이 지적하는 것과 관련하여 남-북 간의 위기 상황에서 그 위기를 높이게 하는 요소들에 대해 Occam’s Razor 를 예로 권하고 싶다. 이것은 14세기 수사학자들이 제시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로 논리적 비약이나 복잡한 논쟁의 전개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원칙으로 제시된 것이다. 위의 Fallacy of Analogy 와도 관련이 있지만, 예를 들어 남-북의 현실적 문제로 논란이 일어날 때 의미없는 논난의 증폭이나 과대화를 막기 위한 데 쓰일 수 있다.
이 Occam’s Razor는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가장 적은 가정을 쓰고 있는 설명은 그것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는 의미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경제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는 논리이다. 지난 천안함 사건 때도 그렇고 이번 미국대사 피습 사건도 시간이 가면서 비약, 과장된 논란이 나오면서 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 Occam’s Razor를 따르자면, 언론매체들은 진실로 드러난 것, 사실로 확인된 것 만을 보도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 따라서 논점을 명백히 하고 인식의 혼란을 막는 것이 중요하며, 추측, 예단, 가능한 추론들 등은 자제하는 것이 요구된다.

북-미관계
지난 글에서 본인이 지적한바 대로 북-미 간에는 공식적 회담의 단계로 넘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김 성 대사와 북한의 김계관 간의 만남이 다만 장소관계로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한-미 군사 훈련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그러한 견해는 두가지 면에서 뒷받침 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한-미 군사훈련과 관련된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20일에 있었던 미-북한 1.5트랙 회의에서 북한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이번 한-미 훈련에 참가하는 미국의 전력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최초의 계획에는 미 7함대의 죠지와싱톤 항모와 7함대 기함인 블루릿지 등이 불참하는 것으로 되었으나 나중에 기함인 블루 릿지는 훈련에 참가하였고 이외에 9000t 급 구축함 3척, 구조함 1척 그리고 Littoral combat ship ( 35oot 급 ) 등 5척이 한국에 도착하였고 이에 추가하여 6000t 급의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콜럼비아 가 합세하였다. 또한 여기에 참가한 미 해병대의 규모도 대대급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이것은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미-일 합동 훈련에 비하면 ( 항모를 포함한 총 19척의 전함, 사단급 미군 병력 참 가 ) 훨신 축소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미-이란 간의 핵 협상이 3월 말이면 그 내용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협상의 난관이었던 원심 분리기의 숫자와 Breakout Time 이 대체적으로 미국의 요구대로- 예를 들면 breakout time 을 1년으로 하는 문제- 타결이 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에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것은 이러한 미-북한의 문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새로운 냉전 관계로 표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북한과 러시아와의 밀착되어 가는 관계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의 입장과 같은 처지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러시아의 북한에의 밀착은, 지난 2013년 8월 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2013년 5월에 최용해가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미-중-남-북한의 4자회담을 제의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Yonhap News, Beijing , Aug. 27 )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설치된 6자회담에서 러시아와 일본을 제외시키고 제시된 북한의 제의에 미국, 한국 등은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성이 결여된 것을 이유로 하여, 그리고 중국의 회의적 태도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러시아는 100억 불에 가까운 북한의 빗을 탕감하는 러시아 의회의 조치를 2014년 4월에 통과시켰고, 이어서 UN 에서의 북한 문제 논의에 협력을 요구하는 이 수용 외무상의 2014년 10월 러시아 방문, 그리고 최용해 의 11월 러시아 방문을 통해 경제 협력의 강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의 가능성과 더불어 러시아에 대한 경쟁적 입장에 있는 중국의 북한 접근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왕 이 가 발표한 중국의 북한 접근은 이렇게 외부적인 환경에 따른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 까?  
먼저 북한은 과연 이런 기회를 받아 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최근에 중국을 방문하고 북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 어느 미국인에 의하면, 북한의 최근 특징은 대외적으로 도전적이고, 내부적으로는 불안정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이들도 냉전에 지쳐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지도층이 제시하는 변화의 목표가 분명하게 이해되어 있고 제대로 추구되고 있는 가?

맺는 말
위기 끝에 기회가 온다는 말이 증명되듯 최근의 한반도 주변 정세는 일본을 제외한 미-중-러의 적극적 개입과 국제 기구를 이용하는 대결적 견해의 표출로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Kissinger 박사가 70여년의 격랑을 헤치며 국제정치를 이끌어 온 경험을 토대로 제시한 견해는 위대한 정치인의 역할의 필요성이다. 중국의 등소평을 비롯한 지도층, 독일의 브란트를 비롯한 통독의 역군들, 이들의 공통점은 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 그리고 가능한 것에 대한 최대한의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작동화 시켰다는 것이다. Kissinger 박사는 존재하는 것 만에 시각을 고정시키면, 사회나 정책은 정체되며, 능력에 넘치는 목표를 세우면 체제는 자폭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싱갱이에 가까운 국내 정쟁을 아우르고, 억지에 가까운 북한의 주장을 포용하는 원대한 가치와 목표를 제시하며 대세를 이끌어 나갈 재목이 필요하다.
개별적 욕심보다는 조화로운 지혜를 구하는 자세, 심복보다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재를 얻을 수 있는 너그러움, 그러나 이러한 여유를 용납하지 않는 현실, 모든 것이 어렵고 힘 든 상황이 더 목전에 압도한다.
이 대담을 끝내면서, Kissinger 박사는 프러시아의 Bismark 재상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최고의 정치인이란 神( God ) 의 발자국 소리를 주의깊게 듣는, 그 외투자락을 잡고, 같은 방향으로 몇 걸음 걷는 사람”  
그는 영국의 Thatcher 수상 에게 이 말을 했으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