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4 12:40
북한의 붕괴: 허상과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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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붕괴: 허상과 실상
 김영식    | 2015·01·02 02:11 | VOTE : 105 |
외국학자들과의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한 간담에서 흔히 겪는 일이지만,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정세를 보려는 이들은 통일 문제와 연결된 맥락에서 정세를 정리하려는 한국 학자들에게 그 지루한 의견 교환을 끝내기 위해서 준비된 질문을 던진다: 통일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도 전에 이들은 ‘그렇다면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는가?’ 로 재촉한다.
통일에 관한 견해와 관련하여, 실제 통일이 시도되는 경우 여기에 필요한 이른바 ‘통일 비용’의 문제 제기도 사실상 통일의 불가능을 예견하는 견해로 간주되는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97년에 나온 Marcus Noland 의 한국 통일의 비용 문제는 97년 당시로서는 높은 북한으로 부터의 이주율 등,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여겨졌다.
최근에 Kristine Kim 이 쓴 논문에서 통일은, 통일원 자료를 이용하여 제시한 것을 보면, 2012년 GDP ( 1,15 Trillion$ ) 의 7%인 80,62 Billion$ 의 통일 비용을 감안하면, 대체적으로 2020년에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인 경제적 수치를 이용한 분석은 그러나 통일에의 국민적 의지와 연관된 맥락에서 볼 때 달라질 수 있다.
위의 Noland 가 분석한 것에서도 누차 지적되는 것이지만 이른바 ‘독일의 교훈’ 이 한국 통일 문제에 주는 압력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지만, 한반도에의 무차별적인 유추나 적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독일의 경우에 겪었던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문제도 중요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독일의 경우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냉전 종식의 경제적 환경
1989년-1990년 의 동부 유럽국가들의 체제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서 강조되는 것은 정치적 요인을 중심으로 한 냉전의 종식에 있었다. 그러나 그 요인들을 경제적 환경으로 확대해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1990년 당시의 독일을 포함한 동부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상황을 보면, 동독의 1인당 GDP는 9,679$ 로 이것은 당시의 소련 ( 6,871$ )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당시에 체코는 3,100$, 헝가리 2,800$, 불가리아 2,200$, 폴란드1,700$ 등이고 냉전 종식에서 거의 폭력적인 정변을 겪은 루마니아는 1,600$로 제일 낮은 수준에 있었다.
이것은 이 나라들에서 기본적인 먹는 문제는 해결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넘어선 자유의 주장은 이것을 바탕으로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비교적 체제 변화가 쉽게, 또는 순조롭게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경제적 상황이- 에스토니아 10,733$, 라트비아 9,841$, 리투아니아 8,571$ -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혼란이 심했던 루마니아에서 볼 수 있었던 내분에 의한 권력 쟁투 등이 체제 변화 과정에서 노정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경제적 환경이 달랐고 또 기독교의 공통적 배경을 지닌 이들 국가의 경우 예외적인 것이 되었다.

북한의 상황 과 딜렘마
올 12월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1인당 GNI ( 2013년 기준 )는 138만원으로 조사되었는데, 이것은 통계청의 계산에 의하면 1,252 $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한국의 1인당 GDI 2870만원에 비교하면 20/1 도 안 되는 것 이며, 냉전 종식 당시의 동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서독 통합 당시 ( 1990년 )의 GDP 의 차이는 동독:서독 이 9,679$: 15,300$ 로 서독이 동독의 2배가 조금 못 된다. 따라서 20배가 넘는 현재의 남-북한 간의 경제적 격차는 통일 이후 잠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독일의 경우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먹는 문제의 해결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는 자유의 주장의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동 유럽의 경우를 감안하면, 적어도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500-2,000$ 이상의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부분적으로 북한의 배급 체계가 붕괴되고 텃밭에 대한 조치가 허용되고 있으나 지금의 수준으로는 아직까지 배급제도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 야 할 것이다
북한은 얼마 전부터 군사-경제 병진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현재의 북한의 경제는 위에서 제시한 수치에서 보듯이 오랜 기간 동안의 경제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자연 재해 등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북한이 1970년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간신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요구- 예를 들면 자유, 인권 문제- 를 할 수 없게 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경제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또 다른 요구의 제시를 가능하게 하는 상태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정치,사회적 분석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 사회적인 북한의 분석이다. 소련 말기에 소련의 분석에서 많이 쓰이던 용어가운데 하나가 Nomenklatura 인데 이들은 소련에서 당을 장악하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던 새로운 지배 계급을 지칭한 것이다. 소련의 경우 소련 공산당원 1700 만 중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숫자는 750,000명으로 이들이 지도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결국 평등을 지향한다는 공산 사회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이들은 전체 국민들과의 의견차이를 노정시키면서 사회적 괴리 현상을 초래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Pipes 가 지적한 대로 어느 관료적 지배국가도 안정된 것은 없고, 배신과 파산, 아니면 겉으로는 강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신경증적 불안과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중 지배적 위치에 있는 당 Apparatchik( 관료 ) 들은 세계혁명을 내세우면서 자기들의 국가적 목적을 촉진하는 것만이 대의라고 보고 또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최우선 강조점은 긴장완화를 반대하고 정치적 안보를 강조하면서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장성택과 그 일파에 대한 숙청은 단순한 권력 싸움이라기 보다는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현실주의적 세력, 곧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게 될 집단에 대한 대대적인 제거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안정적 집권이 진행되면 이 세력들은 다시 소생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서 언급해야 할 것은 이른바 Mirror Image 이다. 이것도 역시 소련에 대해 미국인들이 보였던 하나의 경향에 대한 지적에서 나온 것인데, 예를 들어 미국인 지식인들 가운데 ‘소련인들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라는 인식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소련의 프로파간다는 미국인들이 지닌 Mirror Image를 진흥시키면서, 자기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며, 소련의 궁극적 목표에 대한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하는 2중적 방법을 쓰고 있었다. 이로 인한 정책 실패는 소련의 목표나 동기에 대한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혼란이 지속되어 결국은 공산국가들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결여되었고, 이러한 실상에 대한 혼란으로 소련에 대한 효과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강구되지 못하고 선제적인 정책 조치를 취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 Pipes 의 지적이다.
최근에 북한의 권력 서열에서 3위에 있던 최용해의 2인자로의 부상을 놓고 일부에서 이것이 마치 김정은 의 부인과 최용해의 부인간의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가능성을 중시하려는 견해가 나돌고 있으나 이것은 권력의 핵심 문제를 놓친 견해일 뿐이다.
오히려 가능한 추리를 하자면, 황병서를 보좌하고 인천에 왔던 최용해는 남측으로부터 국회의원으로 있는 임 수경의 인사를 받는, 과거의 관계에 대한 보상을 받았던 것이 더 주효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내에 자기들에 친근한 세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로서는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실상 파악에 도움을 주는 이해
이미 7,80년대 부터 북한은 Autarchy의 대표적 국가로 경제학자 Amin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이른바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갖추어야 할 이유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는 1990년 에 마지막 이웃인 중국 마저 체제 개방을 추구하는 변화를 하였지만 북한은 계속 고립적, 폐쇄적 경제 체제를 유지하여 왔다. 핵 무기 보유를 위한 20여년 간의 국제 체제와의 대립 갈등을 겪으면서 그 고립, 제재는 계속되었고 그 이웃 국가들로부터 부채를 탕감받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고립된 상태에서 그 삶의 전부를 안보를 위해 사로 잡히게 된 북한의 주민들은 만성적 식량 부족과 경제적 빈곤을 겪어야 했다. 겉으로는 핵 전쟁에서의 승리를 외치지만 내부적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것이 북한의 실정이다.
최근에 북한은 한국의 통일 정책에 대해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비난을 하였고, 어제 신년사에서는 ‘제도 통일’에 대한 반대를 표명했다. 어제부터는 북한에서 중국, 러시아의 영화 상영을 금지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소련의 말기에 보였던 증상들, Pipes 에 의하면, 미국의 정책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 국가의 전망에 대한 절망적 표출, 경제적 파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신, 등이 서서히 노정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딜렘마에 대한 처방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주민의 생활을 개선 하는 일은, 또는 경제적 발전을 위한 투자는 결과적으로 그 열매로 북한 주민들의 자아 발견으로 이끌어 질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지역적으로 그 발전의 효과를 차단한다고 하는 방법- 예를 들어 경제 특구 등-이라고 하더라도 그 파급을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경험을 빌리면, 대화와 교류를 더욱 적극적, 긍정적으로 이용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무분별한 북한 주민의 유입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그들 자체로 자생력을 키우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계몽적 ‘자유’ 광고도 중요 하지만, 당 Apprachik 에 대하여 ‘개방적 사고’, ‘변화의 태도’ 만이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에서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방법에서 그 “깨어난 양심” 의 구심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잘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동 유럽 처럼 종교적 인 것에 기반을 둘 수 없는 만큼, 민족주의 또는 전통적 윤리 의식 등에 의존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 하다.
아무리 많은 제한과 조건이 제시되더라도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며, 북한 전역을 공단이나 특구로 뒤덮는다는 각오로 정책을 역동적으로 집행하면 통일의 과정은 단축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