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1 12:24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8 )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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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8 )
 김영식  | 2012·04·15 11:23 | VOTE : 73 |
장래에 대한 단일한 전망과 계획에 기초를 두고 역사를 우상화 시키려는 공산주의자 들에게오직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주의의 일정한 기준에 서서 역사를 정확히 해석하도록 함으로서 그들의 이데올로기 결합체가 불합리 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정확히 해석된 역사는 국민들에게 관용과 지혜를 가르치며, 개인의 자유, 온건한 정치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의 본질은 모든 정당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자들과 비판적 사고를 하는 자들은 좌익이론이 포함하고 있는 함정을 잘 알고 있고 사르트르 와 같은 좌파 지식인의 윤리적 급진주의가 사회 구조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오히려 혁명주의적 열정 만을 강조하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성급한 복지정책이 복지국가 자체의 목적을 좌절시키게 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롱은 자유주의가 현실 자체의 다양성을 잘 알고 있으며, 끊임 없는 진실을 추구하며 도덕적, 지식적인 원칙과 같은 궁극적 신념에서 흔들림이 없이 나아가야 하며 다원적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프랑스의 국민적 자긍심은 그 정체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다원적 세계관을 확보할 때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3공화국, 4공화국 등에서 강세를 보였던 좌파 정당들은 60년대 이후 약세로 돌아 섰고, 프랑스 공산당은 1976년 공산주의로의 소비에트 모델을 포기했고, 또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도 포기 했으나  1978년 선거에서부터 사회당에 뒤지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는 M-L 주의도 포기한다고 선언했으나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서 사회당에게 패배하여 완전히 쇄락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좌파와 우파 간의 관계의 또 다른 면으로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적 樣相에 대한 당사자들, 그리고 제3자들의 인식, 그 양상들을 판별하는 준거들에 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최근의 한국 정치를 보면 여-야 간에 거의 전쟁에 가까운 설전과 책략들을 동원하고 있고, 모든 것을 전략적 차원에서 견해를 발표하며, 또 선전으로 반대파를 공격하면서 비인간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느냐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고, 따라서 이 대립적 양상이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당연한 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이 보수고, 무엇이 進步냐의 구분은, 예를 들어 복지를 앞세우는 진보와 통합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보수 의 사람들은 그 개념이 모호하거나 심지어 왜곡된 경우,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배반하게 되어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강조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는 진실과 相互尊重이 유지될 때만 적절하게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다. 편협되거나 치우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적대적으로 대하게 되어 쌍방의 만족을 위한 논의가 불가능하게 된다.
한국 정치에서 좌와 우, 그리고 진보와 保守가 그 이념적 내용에 상관없이 혼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형상이다. 어느 야당은 左派라는 용어와 進步 정당이라는 용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진보주의는 영국에서 1890년대에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그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과격주의와 연결되어 조소의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 이외의 별다른 의미가 없었고, 19세기 말 미국의 클리브란드 대통령의 정책 때 자유주의적인 의미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도 1890년대의 미국 내의 과격주의와 관련되어 Populism의 용어와 관련되어 쓰여 졌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현실적으로 이 진보주의는 언어적 의미에서 보수주의와 대칭되는 의미로 볼 수 있으나 그 사용에 있어서 보수주의는 미국에서와 같이 자유주의에 대칭되는 의미로 더 사용되며, 민주당-공화당의 대칭은 자유주의적 ( liberal )- 보수주의적 의 의미로 더 사용되고, 다만 두 정당 모두 유럽의 정당들에 비하면 보수성이 강한 것으로 보되 비교적 민주당이 조금 더 進步的이다 라고 조심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미국적 의미에서 liberal 과 progressive 는 모두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것으로 간주되며, 다만 진보적인 것은 산업환경의 변화에 중점을 둔 ‘사회 정의’ 의 필요성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
블루멘탈 (S. Blumenthal)은 보수주의는 그 정의를 위해 진보주의가 필요하며 미국은 그 역사를 통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공존해 왔슴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진보주의는 인간 이성과 창조성에 바탕을 두고 개혁을 추구하나, 보수주의는 단순히 변화의 반대나 현상유지만 강좌는 것이 아니고, 그 위에서 경험적 지식, 신념, 그리고 개인 책임을 중요시 하는 개인주의를 강조하면서,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과거로부터 찾고, 더 신중한 개혁에의 접근을 추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두 접근 방법을 조화시켜 타협과 상호존중을 통해 적극적, 긍정적 해결을 추구하여 모두를 만족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의 중요성이 두 접근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 곧 당파성의 강조, 등을 초월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의미있게 받아 들일 필요가 있다.
보다 더 낳은 삶을 위한 노력에서 복지가 싹튼 것이라면 건강한 삶은 변화와 전통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보수주의나 진보주의가 주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할 때, 대립보다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더 바람직 한 것은 자명하다. 이제 Governance 의 시대에 국민들의 판단의 중요성이 더 강조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국민들의 정책적 학습이 더욱 절실한 요구로 되고 있다. 국민의 동의만 얻으려는 전략에만 매달리는 매체의 선전 광고, 선거운동 전략, 이른바 Think-Tank 집단들, 정치적인 학자들과 같이 국민들을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해물 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