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1 12:22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5 )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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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식  | 2012·04·15 11:15 | VOTE : 70 |
좌익은 사유제의 모순을 노동자들의 소외의 근원으로 제시하면서 그로부터의 해방을 관념적으로 언급하고, 그것을 現實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며, 현재 상태보다는 장래의 상태로 판단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나라들의 실제적 상태에서 판단할 때 이런 해방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생산 수준의 저하, 그리고 국가에 종속된 노동의 강화 등의 형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프랑스에서의 이념적 상황과 관련된 몇 개의 특징을 한국에 적용해 보는 것은  좋은 유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종교와 관련된 것으로, 유럽국가들이 전반적으로 기독교에 침투되어 있는 상황에 비해 韓國의 경우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05년 기준 ) 종교 별로 보면 기독교 ( 개신교+천주교 )가 1376萬  ( 29.2% )으로 가장 많기는 하나, 불교가 1072萬명 ( 22.8% ), 그 다음이 원불교 가 12萬명, 유교가 10萬명의 순으로 되어있고, 종교 인구는 2497萬명 으로 전체 인구의 53.1%에 불과하다.
이러한 종교적 상황이 한국을 포함한 동양 국가들에게 맑시즘의 침투에서 유럽보다 불리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유물론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이론이 정서적인 성격이 강하고 자연과 인간을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유기적 일원체 로 이해 하면서 관용과 조화의 정신에서 일체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신뢰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동양사상의 인문주의적 셩격에 쉽게 적용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 가 “대중의 아편” 이라고 종교를 정의했던 것은 종교가 이들에게 그 사회적 상황에 대한  환상을 주어 그 절망적이고 불평등한 사회를 거부하지 못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롱 은 공산주의가 교회의 영적 생명과 권위가 쇠퇴했던 시대에 경제적, 정치적 이론으로 확대되었고, 이것은 마치 인류의 오랜 불행을 단번에 고쳐주는 한 수단 같이 보이기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들에게 종교를 “아편”이라고 정의하고 배척하면서, 사회적 현실을 단일한 해석체계로 제시하고 오직 공산주의 만이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선언하면서 비타협적인, 광신적인 “신앙”으로 변화를 요구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만약 다른 시대라면 엄격한 종교적 신앙이라는 형태로 표현되었을 시민의 정열이 ‘혁명’이라는 정치적 행동 속에 출구를 찾도록 유도했던 것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종교의 상태는 서구처럼 기독교에 의한 침투가 철저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좌파적 행동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롱은 신의 존재, 내세, 죄인에 대한 벌 등에 대한 시민적 신조, 를 강조하는 종교는 다른 나라나 다른 집단을 적으로 보도록 강조하지 않으면서 시민을 그 국가에 연결시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신론의 이름으로 교회와 싸우려는 공산주의와 달리 시민종교는 국가 지도자에의 헌신을 약화시키거나 사회의 분열과 불화의 원리를 퍼트리는 일 없이 미래를 예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고 있다.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인 퓨 연구소 (Pew Research Center) 는 공익을 위한 목적에서 그 활동을 하는 가운데 ‘종교와 공적 생활’이라는 주제를 통해 종교적 생활이 미국인의 삶에 주는 영향을 밝히는 문제를 중요 테마로 다루고 있다.
최근의 포럼 (Forum) 을 통해 확인된 것은 1) 미국은 매우 종교적인 사회이며, 2) 신에 대한 믿음과 도덕성 간에 깊은 연계성을 국민들이 받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 The Pew Forum, Event Transcript, April 21, 2005) 이 포럼에 참석한 주디스 (John Judis,  Carnegie Endowment )는 유럽에서 맑스주의를 거부한 것은 종교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고, 버거 (Peter Berger  Boston Univ. ) 교수는 미국의 인텔리겐챠들의 유럽化 경향을 미국의 강력한 대중 종교집단들의 반발이 무산시켰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좌파 운동과 북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아롱의 염려는 어느 정도 지식인들의 역할이 큰 만큼 좌경화의 의미도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가 강력한 일본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일본의 특성을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사이에서 일본 지식인들 간에 분열이 생긴 것으로 보았으며, 또 1 세기 전에는 의회주의 정부나 전기 시설등이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西歐 산업주의의 도입은 일본 인텔리겐챠 들의 국가에 대한 기대와 국가가 이들에게 제시했던 것에서 불균형이 노정되어 필연적으로 불안정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일본 지식인들에게서도 좌경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으나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공산주의에 접근하기는 하나 사실상 자기 의사로 그 문지방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만 상황이 내부적 붕괴, 또는 경제적 곤난의 가중화, 대륙국가와의 관계 강화 등으로 공산당이 득세힐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국에서의 지식인들의 좌경화된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박홍 총장의 견해에 의하면, 대학생 운동권에서 M-L 주의로 이론적 무장을 꾀하고 사상 투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80년대로 보인다.
그는 특히 87년부터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의 樣相이 변화되어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지면서 학생운동이 그 주도권 경쟁을 통해 좌파적 성격의 운동으로 정착되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대학생들의 조직인 전대협과 한총련, 등은 통일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의 정책 로선을 노골적으로 지지했을 뿐 아니라 반미적인 투쟁도 강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매스컴들은 이 좌경화에 386세대를 통한 진보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서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폭력을 수반한 사태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 났는데, 89년 5월의 부산 동의 大學 사건, 등이 대표적이며, 특히 88년 에 있었던 대전 목원 大學의 학장 서리를 맡고 있던 김 익원 교수를 대학생들이 감금, 폭행하고 강제 삭발했을 뿐 아니라 살해 위협까지 하는 비윤리적, 反敎育的 모습은 그 사회적 파급에서 엄청난 충격을 준 것이었다.
박 홍 총장이 염려하듯이 군부 독재 시절에 대학생들이 독재 정부를 부인하고 민주화를 주장해 왔던 것은 국민의 호응을 얻었으나 문민 정부가 수립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통해 그 정당성을 확보한 정권에 대한 같은 방식의 투쟁은 더 이상 국민의 호응을 유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의 통일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노선, 북한이 요구하는 ‘남한의 민주화’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민주화’의 요구를 주장하는 학생 운동은 ‘利敵的’ 인 것으로 판정될 수 밖에 없었다.( 대법원, 2003도, 604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