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1 12:15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4 )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068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4 )
 김영식  | 2012·04·15 11:10 | VOTE : 73 |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아롱 이 ‘지식인의 아편 ( 1955 )’을 쓸 당시에 이미 유럽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특히 혁명론 은 이미 서구에서는 지나간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아시아의 대학 졸업생들이 형성하기 쉬운 세계관에 잘 맞을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사아를 지배해 왔던 외국 세력에의 저항에서 볼 때 하나의 정당성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고,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신봉함으로써 결국 인텔리겐챠들은 거의 정신적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 산업주의와 아시아 的  신앙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불안정하며, 전통문화와 전래문화 사이에서 분열을 느끼게 됨을 그는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력이 약 하고 내부의 대립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인텔리겐챠 는 자기들의 결정이 지니는 효력과 공정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사람의 량심에 호소하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성에 최대 기회를 주는데 쏠리게 되고 결국 그것은 역사적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오류의 위험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롱 은 좌익 인텔리겐챠 들이 그 목적으로 제시된 공산당의 승리로 인해 하나의 도그마로 경직된 Ideal 의 노예가 되고, 공산당이라는 교회의 노예가 되어, 반항의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배반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좌익 운동과 지식인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 가 “공산주의의 혼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고 한지 150여년이 지난 지금 공산주의 체제 국가들이 대부분 붕괴된 상태에서, 데리다 (J. Derrida) 는 1989년 Berlin 장벽이 무너진 후에, 그 붕괴에 따라 죽은 공산주의 혼령은 “책임의 철學”을 강조하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 Jacque Derrida, Spectres de Marx 1993 )
또끄빌 (A. Tocqueville) 은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대중의 조급함과 이데올로기 적 열광에 의해 일소되고 자유의 관념이 힘을 잃게 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으로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롱은 경솔한 혁명가와 야심만만한 저널리스트들의 장난감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합체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공정한 기준에 설 때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전 인류를 위해서 사색한다는 오만된 욕심 속에서 국가의 진정한 문제를 무시하고 또 악화시키는 수가 믾았슴을 지적하고 있다.

1993년 대학 총장 협의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박 홍 前 서강대 총장은 ‘통일과제와 학생 참여’ 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대학생들의 통일운동이 80年代 後半부터 급진적으로 돌출되기 시작했고, 특히 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M-L 주의와 김일성 주체 사상의 논쟁들을 주제로 하는 등, 대학생 운동의 변화 양상이 뚜렷해 졌으며, 당시 151개 대학 총학생 회장 및 동아리 회장들이 모두 주사파 임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좌경적 성향의 인사들, 학생들의 친북적 통일 운동이 전개되어 그 도덕성이나 사상성을 의심받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하고 있다.
아직 이립 (而立)에 머물고 있는 현직의 좌파적 정치인은 대담에서 ‘정의’를 강조하면서 “ 싸우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워 싸우는 사람” 의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좌파들이 강조하고 있는 진보라는 개념은, 아롱 에 의하면, 좌파의 신화에서 빼 놓을수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투쟁을 그 강력한 무기로 제시하는 이들 좌파는 항상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와 현재의 프롤레타리아의 상태를 낙관적이고 해방적인 가상적 미래를 제시하면서 이들 계급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롱 에 의하면 프랑스에서의 좌익은 서로 분리된 3가지 관념으로 활기를 띄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1) 전횡적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파, 2) 전통 제도와 사기업의 무질서함을 합리적 질서로 대체하기 위한 조직파, 3) 가문이나 부의 특권에 반대하는 평등파 로 나누고, 이들 중 ㄱ) 자유를 강조하는 좌익은 국제주의적  이상을 부인하는 국가적 좌익에 반대하며, ㄴ)조직을 강조하는 좌익은 독재주의적으로 변하고 국가적 제국주의의 경향을 띠게 된다고 하고, ㄷ) 평등을 강조하는 좌익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되풀이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하고 있다.
이 관념들 중에서 한국의 좌익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지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좌익이 관념적인 해방론을 내세워 노동자를 현실적으로 해방시킬 것처럼 주장하는 데 대해, 실제로 현실적인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때로는 투표에서 비록 공산당, 사회당 에 표를 던지지만, 환상보다는 현실적 이익을 따르며, 따라서 이들은 곧 그 미몽 (迷夢)에서 깨어 나게 되고 결국 이것은 진보주의자들을 괴롭히는 모순의 근원이 되게 된다는 것이 아롱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2차대전 후의 프랑스에서 마샬계획 (Marshall Plan  1947-1952 )이 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해 필요한 期間을 5년이나 단축시킨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좌익은 이것을 실업, 저임금 그리고 빈곤의 원인으로 돌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시행된 사회보장계획이 이때의 국가 공업 발전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사회의 다른 계층과 대립 하는 것으로 프롤레타리아를 단결시키고, 당 의 지도를 받아야 혁명적 성격을 띠게 되고,당이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보았던 싸르트르 (Sartre) 의 논리를 반박하였다.
그 의 주장에 따르면, 좌익의 신화가 유럽과는 다르게 아시아 에서는 정치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분리되어 나타남으로써 본래의 목적, 의미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곧 입헌 정체의 능력, 그리고 산업 대중사회에서의 사회문제 처리 능력,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특히 좌익은 의회의 부진, 대중의 초조감 등으로 말미암아 그 목적 자체를 挫折시키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지출, 과세 등에서 정치적 환상을 가지고 제도화 한다든가, 이데올로기적  열광에 휩싸인 상태로 집행하려고 했을 때 그것은 재난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