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1 12:07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1 )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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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1 )
 김영식  | 2012·04·15 10:51 | VOTE : 71 |
* 이 글은 계간지 "본질과 현상" 26호 ( 2011 겨울 )에 게재 되었던 것입니다. 분량이 많아서 나누어 게재합니다.

                                                                                                                 김 영식
서론
이른바 좌파 정권으로 자칭했던 대통령 및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그리고 철저한 운동권으로 학창 시절을 보낸 어느 정치인이 최근 원로 정치인과의 대담에서 “과거 국민의 관심이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이었다면, 요즘엔 복지, 정의 등으로 관심이 옮겨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라고 하고 “ 저는 그걸 좌다, 우다 그렇게 구분 안하고 보고 있다” 고 했다.( News way, 2011.03.23  이회창 대표와의 대담 )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 지천명의 나이가 된 그는 이제 불혹의 나이로 들어선 후배 좌파야당 정치인이 “정의”를 강조하자 이에 대해 “유연함”을 주문하기도 했다. ( 시사 Inlive 196호 2011.06.25 대담 )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던 그가 보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레이몽 아롱 ( R. Aron ) 에 따르면 좌익 진보주의자들의 개혁은 권력의 재분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정계에 발을 디디고 권력의 냄새를 맡아 본 이들은 누구나 자기 야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며 그것에 반대하는 반대자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나라를 무질서한 상태에 빠트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l'Opium des Intellectuels, 1955 )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보수를 대변하는 일간지의 선임기자가 쓴 글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적나라하게 표현한 내용을 紹介하면,  “ 나는 좌파세력의 뛰어난 감각과 기민함에 늘 탄복한다. 이들은 인터넷과 트위터를 장악하고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파고들고 먹히는 지를 안다......좌파세력의 번성은 대중문화-예술-문학 분야의 솜씨좋은 프로들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도 좌파 쪽에 우호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급진 좌경세력’ 이란 1980년대 말도 더 이상 우리 사회를 경각시키지 못한다. 좌파 세력이 우파 전체에 덮어씌워 놓은 용어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다.... ( 이들은 )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정권을 바꾸기 위해 지금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희생도 감수한다.”( 조선일보, 2011, 08.05 )
이글은 우리나라에서 우파가 아직 몰락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반문으로 끝내고 있다.
200년대 초반에 몇 개의 언론에서 이른바 1980년대 대학생 운동권 출신의 386세대를 지지, 옹호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들 386세대들 중에서 좌파의 이념이 들불처럼 번졌고, 새 한글과컴퓨터 한글 문서.hwp새 한글과컴퓨터 한글 문서.hwp친북, 좌경, 반미 세력이 나라를 장악했다는 지적을 한 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 Chosun.com 2004.09.10-11 배성규기자, dong-a.com, 2010.11.02 신석호)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좌-우를 아우르는 넓은 정책적 선택의 자유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입장들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워 졌다고 할 수 있는 가? 좌 -우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복잡한 정치문제의 2분법적인 해석, 곧 좌-우를 대립된 극 (極)으로 하여 마치 정치적인 2개의 집단의 세계적 대립인 것처럼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프랑스에서 “좌” 는 “‘運動’당”, 그리고 “우” 는 “‘질서’의 당” 으로 지칭되고 있으며, 현대적인 의미에서 좌파는 노동자를 지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집단주의를 강조하면서 국가의 재분배에 대한 경제, 사회적인 개입으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반면, 우파는 개인주의와 자유를 강조하고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그리고 계급주의의 부인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른바 좌파-우파의 대립적 상황에서 사용되는 좌-우 라는 정책적 언어의 표현에 대한 논쟁은 종종 좌-우를 의미하는 본래의 사상과는 다르게 감정적 편견을 실린 정치적 논쟁으로 바뀌곤  했다.

좌-우의 역사
좌-우 개념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프랑스 혁명 ( 1789年 )때부터 평민을 중심으로 한 제3세력들과 귀족, 승려를 중심으로 한 왕권파간에 의회에서 차이가 나게 제시되기 시작한 것으로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수정되어 왔다. 혁명 당시에, 좌파는 그 군주의 권리를 제한하고자 했고, 우파는 절대 군주제를 지지했다 는 차이가 있었고, 19세기에는 그 대립이 공화제와 군주제의 차이로 나타났다. 제3공화국때인 1871年에 좌파는 입법부의 우월을 주장했고, 우파는 강한 행정부를 지지하였다.
좌-우 라는 용어는 프랑스 혁명 당시  입법부의 의회 의원들이 의장의 좌편에 혁명을 지지하는派가 섰고, 따라서 군주제에 제한을 가하려는 派가 섰고 右便에 君主의 權限을 지지하는 파가 서는 것으로 양분되었을 때부터 나타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개혁파는 의장의 좌측에, 온건파는 중간에, 그리고 “헌법 수호파” 가 우측에 왕권지지파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1871년부터 1881년 사이에 프랑스에는 정당들이 공화 좌파, 중도 우파, 중도 좌파 (1871 ), 극좌파 (1876), 과격 좌파 ( 1881 ), 등의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20 세기 초에 들면서 左-右 용어는 정치적 이념에 관련되어 쓰이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이것은 점차 “빨갱이” 나 “반동”, 또는 공화파, 보수파 등의 용어를 대체하게 되었다.
프랑스 사회당의 전신인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은 1871년 형성되었으나 “점진적 개혁”을 강조했고, 1899년 프랑스 사회당으로 통합되면서 연정에의 참여를 지지했었다.
左-右의 용어가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6年의 총선 과정에서 였는데, 이때부터 노동당이 제3의 세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군주제에 제한을 가하고 공화제를 추구했던 좌파와 노동자들의 계급 혁명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좌파는 어떤 공통점이 있고, 그 시대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유럽 좌파 정당 들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 가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