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11 09:57
지혜를 구하는가? :한국 보수정당의 실상과 과제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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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구하는가? :한국 보수정당의 실상과 과제

지난 년 말, 그리고 새해를 맞으면서 새해에 福 많이 받으라는 말을 동료들, 제자들 친척들로부터 들으면서, 유난히 올해는 그 의미가 새삼스러운 느낌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 진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주는 무게가 작용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세월의 흐름을 내 자신의 미래와 관련하여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받아 들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새해에 거는 희망이라는 상투적인 표현마저도 이제는 진부한 단어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해라는 의미가 새로운 삶의 의미가 포함된 시작으로 보고 거기에 희망을 걸고 바라보는 자세는 세월의 유구한 흐름이라는 것이 주는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밝고 희망찬 삶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상쾌한 일임이 틀림 없다.

본인의 홈페이지와 대학동창 싸이트에 이 글을 올리기 시작하여 십여 년이 넘었지만, 내가 처음에 시도했던 겸손하고 온건한, 그러면서 포용적인 글은 어느 때부터 인지 나도 모르게 편협된, 비타협적인 그리고 완고한, 때로는 난폭한 글로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와 통일의 문제, 대외 관계, 국내 정치의 이념적 문제에 관련해서는 공격적인 논리를 위주로 하는 論難(논난)의 수준으로 표변하기도 하였다.

올해는 새로운 글의 시작이라는 의미의 德談(덕담)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덕담도 받아 들이는 사람에 따라 비수처럼 느껴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인용하는 글은 보편적인 의미의 지혜로 받아 들여지는 책 ( 성경 )에서 인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보수주의의 정수

내가 인용하고자 하는 글은 미국의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지혜는 시작된다.“ 는 것이다. 여기에 뒤따르는 글이 성스러운 것을 아는 것이 明察(명찰)이다.” 대체적으로 문학가, 철학자, 역사학자 등이 글을 올리는 이 싸이트에서는 이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또 성경을 인용하지 않고도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Remembering the God Man Forgot, Jeremy A. Kee , 2019, 09, 14, The Imaginative Conservative, April,14, 2019 )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정치문화에서 기독교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이 위의 글은 시민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고, 이른바conventional wisdom의 의미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미 보수주의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Burke 의 시대에서부터 그 사회 질서와 철학은 종교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 인구의 66%가 기독교 계통의 종교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에서 성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 Pew Research Center , 2020 ) 사회 생활에서 기독교가 주는 영향을 감안한다면, 그 사회적 질서는 Gabriel Almond Sidney Verba 에 따르면, 훨씬 안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잠언 ( Proverbes, 9 10 ) 에 나오는 것이다. 신은 여호와를 의미하고 따라서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다.

 반면 한국인의 경우는 2021년 갤럽이 조사한 것에 의하면, 불교가 16%, 기독교가 23% ( 개신교16%, 천주교 7% ), 무종교라는 부분이 무려 60% 로 나와 있다. 한국인의 60%가 無宗敎(무종교)라는 높은 비율은 따라서 미국과는 차이가 있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전통적, 또는 토템적 신앙의 의식에 따른 가치 기준을, 예를 들면 하늘, 태양 또는 달을 숭배하는 방식을 따를 수도 있다.

미국 보수주의의 대부인 Russell Kirk 는 미국의 공화주의를 주창한 선조들이 실제적 경험과 훈련에 의해 보수적인 사람들이었고, 정의와 자유의 지속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헌법을 형성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고 있다. john Adams, Alexander Hamilton, James Madison 등은 그 저서들에서 영국에서의 분리를 강조하며, 역사와 인간 본성에 기초를 둔 냉철하고 실제적인 보수주의를 제시하였고, 그들이 만든 헌법은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보수적 장치로 알려졌다.

이들은 추상적인 것을 불신하고 실제적 경험과 구체적 상황과 유리된, 절대적 정치적 도그마를 불신하고, 인간 사회의 행위를 지배하는 진실의 존재를 믿었다. 이들이 지적하는 미국의 보수적 사고를 특징짓는 원칙들을 보면,

첫째는 인간과 국가는 도덕적 법에 의해 지배되며, 그 법은 인간적인 지혜를 뛰어 넘는, () 적인 정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정치적 문제는 그 본질에서 도덕적, 종교적 문제이며, 현명한 정치인은 그 도덕적 법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이에 따라 행동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화를 우리에게 준 선조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다음 세대에게 이를 물려 줄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 본성과 시민 사회의 질서 구조를 경솔하게 변경하려고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둥째는 고급 문화의 특징은 그 다양성에 있다는 것이다. 통합성, 균질성, 절대적 평등은 존재하는 자유와 진정한 정신적 활력이 죽은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폭군이나 과두체의 통합성이 강조하는 힘, 또끄빌이 부른 민주적 전제주의의 통합성을 거부하고 있다.

셋째는 정의;란 모든 남녀가 그들 자신의 성격에 따라 가장 잘 맞는 그들 자신의 것, 에 대한 권리, 그 능력, 개성에 따른 보상,을 의미한다. 고양된 사회란 모든 남녀가 법 앞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요구하며, 그러나 그 평등은 조건의 평등에 까지 확대되어서는 아니 되며, 사회는 모든 물건에 대한 평등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커다란 동반자 관계를 의미한다, 정당한 사회란 건전한 지도력, 능력에 따른 차별있는 보상, 존경과 의무감이 지배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넷째는 권력은 위험으로 가득찬 것으로, 좋은 국가란 권력이 견제되고 균형된 것이며, 건전한 헌법과 관습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중앙집중화는 보통 사회적 퇴폐를 의미한다.

다섯째는 과거는 지혜의 보고이다. Burke 가 말한 대로,” 개인은 바보일 수도 있으나 집단으로서는 현명하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간들이 도덕적 전통, 사회적 경험에 의해 이끌어 져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지식의 복합체는 조상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어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섯째는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정치적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실정법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이 진보를 할 때, 그 것은 인간의 제한성을 현명하게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이다.

일곱째는 보수주의자들은 변화와 개혁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으며, 도덕적, 정치적 쇄신은 파괴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모든 인간의 제도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며, 완만한 변화는 보수적 변화의 방법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성장과 변경을 사회적 도덕적 전통과 타협시키려고 애써 왔다. ( Ten conservative Principles, Russell Kirk, 2121, 10,19. ),

결론적으로 보자면, 보수주의는 단순하게 재산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만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제도로부터 혜택을 끌어 내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유, 재산, 가정의 보호, 법에 의한 동등한 기회의 보호를 원한다. , 보수주의자는 우리의 전통과 제도 중에서 최선의 것과 가장 필요한 개혁을 타협하면서 최선의 것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솔제니친의 지적

현대에 인간은 조상들의 지혜로부터 돌아서서 神()을 잊었다, Solzhenitsyn 은 선언했다. 인류에 대한 기여에서 교황 들과 같이 존경을 받았던 사람으로 평가 받았던 그는 소련에서 반체제인사로 추방되어 1974년 서독으로 망명했고, 76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94년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2008 8월에 작고한 그는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한국에는 이반 데니스비츠의 하루 ( 1962 )라는 문학 작품으로 알려 졌다,

1978년 하바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는 미국의 자유에서 무기력한 정신적 공허함을 그대로 표현했던 그는 서구가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공허하도록 방치한 수많은 방법을 열거하여 하바드 대 생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Solzhenitsyn 1983 Templeton ()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의 내용은 () 적인 요소가 상실된 인간 의식의 실패였다. 그는 이것이 20세기의 모든 주요 죄악에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하면서, 정신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무정부 상태로 쇠퇴하고 쇠잔되게 된 기폭제로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은 神() 을 저버렸다고 하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면, 인간이 신을 저버렸다면, 인간은 지혜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혼돈, 무질서를 벗어날 길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잠언 1 7절에는 신에 대한 두려움이 지식의 시작이지만, 바보는 지혜와 신의 가르침을 경멸한다고 하고 있다. 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고 그를 존경할 때 그 지혜를 얻기 위한 올바른 자세를 취하게 되며, 신의 전망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을 지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질 수 있으며, 죄악은 바보스러우며, 올바름은 현명한 것이 된다.

 

또한 Solzhenitsyn Harvard 대 연설 ( 1978 )에서 서구에서의 쇠퇴와 관련하여 지적한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중재자로서 법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었다. 법에 의해서 사회적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이 최고의 善()이라고 한다면, 법적 견지에서 옳다고 하면 더 이상의 것이 요구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곧 법적 잣대 만이 중시되고 그 이상의 것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인류의 가능성의 높은 수준은 필요 없는 것이 된다.

인간 삶의 구성이 법적 관계로만 짜여 진다면, 도덕적 평범성의 분위기만 남을 것이다. 수 십 년 간의 점진적인 침식에 의해 서구에서의 삶의 의미는 행복의 추구보다 더 높은 것이 될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선과 악의 개념은 수 세기를 통해 조롱 당해 왔으며, 악이 정치체제에 자리잡기 전에 매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아 왔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난처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는 무법주의자나 전체주의자가 아니면서 법의 권위에 대한 과잉 의존은 영혼을 죽일 수 있으며, 그 의존이 클수록 죽음이 빨리 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 보수 집단의 병폐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보수 집단의 병폐는 곪아터지고 공당으로서의 품위를 잃고 支離滅裂(지리멸렬)의 잡당의 형태로 전락했다. 지난해 말 까지 당 명과 당 헌 까지 작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兎死狗烹(토사구팽) 의 상황을 맞았다는 것은 정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책, 조직, 가치의 정립에서 그 길잡이를 상실한 상태를 맞이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단순한 사람의 교체 만으로 이러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참상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보수당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또한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혼란, 분열,대립을 일으킨 요인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분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국민을 향한 당의 입장, 또는 당내 민주주의를 목표로 한 반성의 모습이나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지도부의 입장도 명확히 표현된 것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가면서 다가 오는 선거 일정에 따라 쫓아가는 형국의 당의 행사는 계속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이것은 국민의 가치를 존중한다거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의미는 이미 상실한 것이다.       

지난해에 있었던 서울시 시장과 부산시 시장의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것은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 주었으나. 보수당 지도부의 안이한 태도는 정당의 기능을 열등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부의 국민 지지도가 간신히 40% 대를 유지하기는 했으나 정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50%를 넘어가는 상황은 자동적으로 야당에 대한 지지나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는 지도부가 작성해 주는 대로 연기만 하면 된다는 말들은 이러한 안이한 대선에 임하는 야당의 입장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 기간 증 언급되는 잘못된 발언이나 그 측근의 비리 등은 언급하지 않겠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 유세의 동향을 보면, 비교적 여당의 경우는 정책의 면에서나 유세를 이끌어 나가는 데서 조직적, 체계적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야당의 경우는 중구 난방 식의 즉흥적, 단발성의 대안을 남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혼돈, 정체, 분열의 위기를 맞아 그 위기를 돌파할 지혜를 창출해야 할 공당의 입장에서 당원들의 창조적 조화와 그 지도부와 당원간의 신뢰 및 협동적 능력의 동원을 가져올 지혜의 의미를 충분하게 당내의 민주주의를 통해 확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통계의 남발을 통해 여론을 誤導(오도)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보이는 행태까지 민주적 선거의 의미를 훼손하려는 사회적 행태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느 누가 말했듯이 Holy Ghost 라는 말이 실감나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 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공당의 당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자유 의지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능력이며, 따라서 지도층은 물론 당원까지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 매 당원에게 필요한 합당한 본분을 주는 정의, ()을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하는 절제, 올바른 것을 위해 올바르게 행동하는 권리, 그리고 신뢰와 희망을 갖추는 것 등이다. 

Hayek는 정당들의 정책이나 이념의 형태를 통해 진보;중도;보수의 상태를 나열하면서 중도 또는 자유주의적 정당의 형세를 통해, 또는 이 3정당들이3각형을 이루면서 정책적으로 끌어 당기는 모습으로, 정책적 특색의 이합 집산이 이루어 지는 것을 설명하면서 복잡하고 복합적인 정책의 제시에서 정책적 차이나 정당 경계가 모호해 지고, 보수, 진보의 내용이 복잡해 지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 Why I am not a conservative, F.A. Hayek, The Constitution of Liberty, The Definitive Edition 1960 )





그러나 1976년 경 부터 유럽 대륙에서는 Euro-communism의 등장으로 정책적으로는 사회주의와의 관련하여 더욱 복잡해 졌으나, 정치체제적으로는 Soviet communism 과 뚜렷이 구분되는 현상을 낳았다.





종전에는 정부의 개입 크기, 국방의 문제, 중산층의 문제, 경제 성장 또는 분배 문제 등에서 보수, 진보 정부의 성격이 규정되었으나  이제는 백화점식 정책 제안으로 이 구분이 모호해 지게 되었다. 정당들의 관계의 복잡화에서 오는 혼란과 분파화를 막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원칙과 가치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Hayek 는 위의 글에서 보수주의의 원칙 등의 모호성, 목표의 불명확성, 변화, 발전의 거부 등으로 보수주의를 거부하는 이유를 제시하였으나 그는 보수, 진보의 원칙의 차이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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