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7-12 10:51
嚴正한 事實과 現實에 기반을 둔 정책의 창조적 전개를 위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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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嚴正事實現實에 기반을 둔 정책의 창조적 전개를 위하여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에서 판문점은 40 km 가 못되는 거리를 두고 있고, 거기서 다시 20 km 북방에 북한이 있다. 북한은 항상 그만한 거리를 두고 그 자리에 있지만 냉전 시대의 북한은 마치 북극 끝자락에 달라 붙은 것처럼 차고 냉혹한 존재처럼 생각되어 왔다.

내가 판문점을 방문한 때는 1976 8월의 미루나무사건이 발생한 이후여서 더욱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그 당시의 미군과 북한 군간의 난폭한 충돌은, 70년대 초의 남-북 간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엄연한 현실과 그 대립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증명하는 냉전적 비극의 절정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그러던 북한이 이제는 무력적 위세 보다는 대화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비록 현실론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 적대적이었던 두 세력이, 그 평화 내지 무력 충돌의 지양을 위한 남-북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냉전적 현실이나 대립적 관계의 개선을 위한 진전이 명백하게 현실화, 내지 규정된 것이 없다는 것도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처럼 북한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북한이 가까이 있고 대화를 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도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봐 주고 또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들에게 알려 주고, 이런 의사 소통을 통해 양측의 주장을 한반도의 평화, 한 민족의 번영을 위한 매듭으로 엮어 나갈 길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냉엄한 사실

나는 부산 피난 시절에 서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정확히는 1953 2월 경으로 기억된다 중공 군의 대량 개입으로 수원까지 밀렸던 유엔 군은 다시 반격을 하여 서울을 탈환하고 지금의 휴전선과 비슷한 지역을 확보한 채 .소모전을 벌이면서 양측의 피해는 더 심해져 가고 있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전선이 고착되면서 휴전회담도 열리고 있었던 이 때에 정부의 서울 이전이 결정되었고, 이를  위한 공무원의 복귀를 명령 받고 가족 1인을 동반하여 서울에 신고를 하고 주거지를 배정 받도록 되었다.

아버지는 당시 제일 한가했던 (? ) 나를 데리고 부산역으로 가서 기차를 탓고, 어둑해 지면서 기차는 서울을 향해 출발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오버코트를 뒤집어 쓰고 난방도 안되는 기차 속에서 잠을 청했으나 편하게 잠을 잘수는 없었다. 기차는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이따금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 정차를 하기도 했고, 얼어 붙은 깜깜한 밤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

새벽에 들어서 기차를 내렸고 역 근처에서 국밥을 먹은 후 아버지는 시청 쪽을 향해 가다가 거의 다 부서진 건물 사이에서 여관을 찾아 내어 그 주인에게 돈을 주며 방에 불을 때 줄 것을 부탁했다.서너 시간 후 여관을 나와 아버지는 시청 근처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서류를 제출했고, 한참 후에 우리는 지금의 경동교회가 있는 위치, 신당동 근처의 연립 주택에 도착했다.

그 근처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거기서 저녘을 먹은 후 그 연립 주택으로 돌아 왔다. 다행히 난방이 잘되서 우리는 오랫만에 편한 잠을 장 수 있었다. 방은 컷지만 그 방을 비치는 갓없는 전구는 조그마 하고 이따금 껌벅거리며 흐릿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며, 멀리서 계속 들리는 포성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피난 중 문경에서 징집되어간 큰 형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정부에 신고를 하면서 큰형의 소재를 파악해 달라고 국방부 쪽에 신고를 했다.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압도적 인해전술에 대하여 화력 ( Fire Power )에 의해 대항하고 있었다.

몇달 후에 통보를 받았고, 그 당시 큰형은 향로봉에 위치해 있는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중공군이 포진해 있었다. 향로봉은 겨울에 영하 20도를 넘는 강추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알려졌다. 큰 형은 2년 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5형제였고 그 중에 큰형을 포함하여 육군이 2, 공군이 2, 그리고 해군이 1명으로 각각 군대를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는 큰형 때문에 군에 가서 고생을 한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할 수가 없었다. 

瑞氣가 비치는 판문점

작년4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회담을 가진 후, 9월 달에는 문제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고, 9 19일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소개로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명의 북한 주민에게 8분간의 연설을 하였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그러면서도 한국의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극적인 방법을 통해 북한 주민에게 평화와 민족 번영을 위한 노력을  공동으로 기울이자는 다짐을 제의했고, 세 차례에 걸친 김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평화를 위한 대화의 길을 공고히 하였다.

70년대에 가장 비극적인 대결의 장소였던 판문점을 남-북 평화의 대화를 위한 장소로 바꾸어 놓은, 또 그 관계 진전을 위한 瑞氣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瑞氣를 더욱 밝고 빛나게 한 것이 2019 6 30일 에 있었던 Trump- 김정은의 1 시간여에 걸친 판문점 회담이었다. 6 29일 방한하여 한-미 정상 간에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협의를 했던 Trump 대통령은 30일 판문점에서, 이미 친서를 통해 예정되어 있었던 미-북 정상회담을 가졌고,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발표된 내용에 의하면, 비핵화의 진전에 떠라 연락 사무소 개설, 부분적 제재 완화, 그리고 김 위원장을 워싱톤으로 초청하는 내용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 졌다.

문 대통령은 이 회담을 -북 간의 적대관계 종식과 새로운 평화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평가했다. 현실론자들이 지적하는 것을 귀담아 듣을 필요도 있다. 다만 이를 뒤 이을 후속 실무회담이 개최되어 회담에서 논의된 것 들 , 특히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의사와 행동이 진전을 이루는 협의가 계속되어 결과로 도출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Hanoi 회담에서 거론될 것으로 언급되었던 평화체제로의 변화는 한국 측으로서도 더 신중하고 준비된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Shea Cotten 은 전쟁을 끝내는 문제에서, 한국전쟁이 미국 대통령의 행정 명령, 그리고 UN 의 결의안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행정부 중심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의회, 특히 상원의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또 비핵화 같은 문제에서는 의회의 관심이 검증 문제, 보장의 문제에 집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Arms control wonk, Ending the Korean War, Feb. 27, 2019, )

장기적으로 미-북한의 국교수립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지적으로 받아 들일 필요가 있다. -베트남 관계 수립에서도Kerry, McCain 상원 의원의 주도적 개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제 국회의장의 자리는 은퇴를 앞둔 정치인의 마지막 자리라는 사치 보다는 정책적 지평을 넓히는 원숙한 정책을 구사하는 자리로 탈바꿈해야 한다.

일본의 돌출

일본의 우익계 산케이 신문은 지난 6 30, 한국 사회가 Trump-김 위원장의 회담에 도취되어 있을 때, TV, 스마트 폰 액정 부품 등 3개 소재 부품을 7 4일 부터 수출 허가를 받도록 일본 정부가 변경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에 반드시 필요한 이 부품들은 거의 일본에 의존하고 있던 상태에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컷던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이 수출 규제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강조하고 있고, 또 이것이 테러범들이 썻던 사린 가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언급하면서 북한에의 제재문제를 연관시키는 발언을 하였다

미국 언론들은 일본이 미-중 무역 분규에서 미국이 썻던 방법을 모방하고 있고, 또 미국은 한-일 수출 분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중 관계에서 처럼 일본이 한국과의 교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오랜 기간 한국이 일본과의 교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사실상 한-일 간의 긴장은 지난 해 10, 징용 문제 배상문제에서 대법원 ( 1 )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 ( 2012 5 )  확정되고 이를 근거로 일본기업에 강제 집행 절차에 들어 가게 된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일본 언론 ( 산케이 신문  6 30 )이 보도한 수출 규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시행이 시작된 것은   7 4일 인바, 이 기간을 특정한 것과 관련하여 거론할 수 있는 것은 6 30일 판문점에서 있었던Trump - 김정은 회담 뿐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도 누차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은 미-북한 접촉이나 회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1990년대 부터 미-북한 간의 회담을 결국에는 미-일본 간의 동맹 강화로 전환시키는 선언 등으로 이끌어 왔고 북한의 위협성을 항상 미-일 동맹의 근거로 이용해 왔다.

이번 한-일 무역 분규도 시간이 감에 따라 불화수소문제의 불법 유츨을 한국에게 전가시키고, 테러 문제를 위한 전략 물자 수출 제한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Sheila Smith 는 하노이 미-북한 정상 회담의 결렬 후 이에 대한 동맹국들의 반응을 검토하면서 일본의 반응이나 평가는 그렇게 미국이나 Trump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고 보고 있었다. Sheila Smith는 일본이 항상 북한 문제를 다른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었고, 특히 아베는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에서 미국이 그 제재를 완화하지 말 것을 끈질기게 주장해 왔고, UN 내에서도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와 더불어 엄중한 제재 체제를 구축하려고 애를 썻고 이 노력에서 단결의 중요성을 국제 사회에서 설득하려고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The Hanoi Setback and Tokyo’s North Korea Problem,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Blog post by Sheila A. Smith, March 1, 2019 )

이번 판문점에서의 미-북한 정상의 회담은 또 그 협의의 내용은 일본으로 하여금 Nixon Shock 를 연상시키는, 결과적으로 아베가 시도해 왔던 대 북한 압박의 강화의 실패에서 볼 때도, 충격을 주었음이 틀림 없다.

이제는 한국 정부가 아베를 달래 줄 시기가 되었다고 볼 필요가 있다. 아베가 의회 선거를 앞두고 위와 같은 책략을 써야 할 정도라면, 그 선거에서의 승산도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맺으며,

정책의 가장 핵심적 내용은 그 것을 국민의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경험과 가치를 민주제도에 의해 정부의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데서 그 문화의 Vitality 가 발휘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밝게 전개될 것이라고 역사적으로 정책론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정책론자들의 또 다른 주장은 이것이 민주성, 정당성 등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책의 의미는 창조성, 그리고 현명성이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나. 그 후의 일부 베이컨의 경험주의자들에게서는 영리함 ( Clever ) 을 더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로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일반론자들은 이러한 영리함, 또는 Cunning ( 마키아벨리가 강조하는 교활한 의미가 강한 ) 는 당파성을 포함한 편협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부패성을 내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창조성은 이를 위한 선견지명,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요구하며, 먼 앞 날을 내다보는 시각에서 정책의 력동성 ( Dynamical ) 을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책에서 지적을 한바 있지만 일본의 민주주의는 Pseudo-Democracy 라고 표현 했던 Peter J. Herzog  의 지적을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일본에도 민주적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결코 일본 국민 전체의 정치 문화적 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Herzog, Japan's Pseudo-Democracy,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3 pp.19-30 )

한편Columbia 대학이 편찬한 Japan's Modern History,( Asia For Educators 2009  ) 를 보면, 일본은 1890년 부터 제국 ( Empire ) 을 선포하며, 서구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군국주의와 결합한 형태를 유지했고 이것은 결국 태평양전쟁 까지 계속되어 그 패망에서 일본은 민주주의로 재 탄생되었다고 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지배 세력은 종전 전의 지배 세력과의 연관 속에서 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고 하지만 그 역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지배가 갖춘 전체주의적 사회구조가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것에 불과하다. 아베도 그 한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 Herzog 는 서구의 민주국가들이 그 민주주의를 정치체제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방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친숙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49년 종전 후 새로 태어난 나라이며. 그 민주적 역사는 45년에 독립한 한국 보다도 그 민주적 역사는 짧은 편이다. 다만 국제정치적 편리성을 극대로 이용한 "영리함" 때문에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환경의 변화는 더 이상 영리함으로 정책의 근간을 삼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Advocacy-Coalition 이라는 모형으로 소수 엘리트지배를 용납하는 민주주의를 언급하고 있으나. 이것은 무관심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설명이 가능할 수 있으나 일본과 같은 정책적 무지가 팽배한 사회는 의미를 주지 못한다.

21세기에 들어 Sanction을 국제정치적 질서를 위한 도구로 이용해 왔던 것이 이제 서서히 퇴조에 들어가는 상황이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및 EU 국가들로 부터 제재를 당했던 러시아가 조건없이 다시 유럽이사회의 의회 ( PACE ) 로 부터  러시아 대표단이 복귀하도록 허용되었다고-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 6 25 ( 2019 ) 발표되었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도 역시 제거되었다고 발표되었다.( Russia Allowed to Return to PACE Unconditionally, 25 June 2019 )

다른 한편 그 정치적 성향이 불투명했던 Michael E. O'Hanlon 이 제시한 Trump 대통령의 북한과의 거래 내용에 대한 평가를 보면, 잠정적 조치라는 단서하에 미국이 북한의 플류토늄, 농축 우라늄 등의 하부구조 해체를 통한 핵무기 제조 금지와, 교환하여 부분적 제재 완화를 언급힌 것은 Smart Deal, New Idea 라고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이 제재 완화가 우선 UN의 제재, 그리고 미국의 제재완화, 마지막으로 북한 내의 인권 문제에 대한 해결이 이루어 지는데 수십년 ( for decades ) 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강경론자 Bolton 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러나 그의 나이에 알맞게 그의 생전에는 어차피 이루어 질 것으로 낙관( ? )하고 있다.( Donald Trump might havr found the art of a deal with North Korea, Brookings, July 3, 2019  ) 그가 강조하는 북한에서의 인권 문제는 미국에서도 최근 남미로 부터의 난민 문제로부터 더욱 강렬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UN 의 인권문제 위원회의 책임자인 Michelle Bachelet ( 8년간 칠레 대통령 역임 )는 미국내( Texas )에서 이민자 자녀들이 그 부모로부터 격리되어 구금되어 있는 현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 아이들이 구금된 상태의 비인간적이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UN 과 국제법에서 금지된 것이라는 것을 밝혔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 UN Right Chief " Appalled" by US Border Detention Conditions, Says Holding Migrant Children May Violate International Law, 8 July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