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 2014·08·11 11:25 | VOTE : 112 |
대학에
입학해서 이른바 정치 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루는 전공을 택한 후 꼭 50년을 맞게 되는 지금, 위의
질문에 얼마만큼의 자신감을 가지고 답을 할 수 있는가?
대학에서 전공으로 읽은 첫 서적이 오스틴 래니의 책이었고, 그는 정객과
정치인을 구분했던 것- 그는 정객을 부패와 연결시켜서 부정적 의미를 강조 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의한 접근이 오히려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길을 열어 준 것 같다.
그 다음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Hegel 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힐 그린의 도덕과 정치의 연결에 기본을 둔 이상주의적이지만 현실적인 정치에의 윤리적 적용을 강조한 것이었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정치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배우는 것 보다 이것을 거쳐 가르치는 것을 주업으로 했을 때 더 배우는 것이 많음을 깨닫는 것은 나 만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이념의 문제를 다루는 기회를 거쳐 나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룰 기회가 있었고,
이를 둘러싼 논란들은 실제 정치에서 개인의 정치적 활동과 윤리적 범주의 준용을 통해 능동적, 적극적인
사회적 동기로 활성화 시키는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주로 어네스트 바커가 주장하는 생활의 철학적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는 가장 이해가 쉬우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실천이
용이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가 가장 강조하는 “ Agree to Differ ” 는
합리적인 이해를 넘어 실제의 이행에 까지 이르기에는 요원한 느낌마저 주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도 이제는 국제적으로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 들어 섰다고 인정받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의견의 존재가 사회의 관용적 포용성의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그것을 넘어 의견의 합치를 통해 공공(동)의 이익의 실현에까지 이르는데 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적 가치관, 가정, 학교, 사회 등에서 그 질서의 근간으로 유지되어온 윤리적 원칙들이
이제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일어나는 사회의 진화적 변화를 통해 이러한 사회적 윤리의 내용이 그 서구적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으로 설명되어 질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가부장적 권위가 지배하던 가정에서 남-여 평등에 따른 여권의 신장의 연속선상에서 부부간의 관계가 변화된 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기에서 90년대
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교육적 측면에서 이러한 충격적 변화가 준
사회적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고 아직도 사회 정치적으로 그 충격을 벗어나 안정적인 Fundermental을
갖추었다고- 민주적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하기는 힘들다.
이것과 관련하여, “정치” 란 , “정치적”인 것에 대한 학문적 의미의 변화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50년대, 과학화를 지향하는 학자들의 현실주의적인 정의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획득하는가” 의 문제로 인식하였고, 더 나아가 “희귀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을 둘러싼 활동”으로 보려는 입장에서는 정치에서의 제로-썸 적인 갈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편,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정치를 정의하려는 정치철학자들은 정통적인
共同善의 구현을 그 것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20세기 말에 에치오니의 능동적 사회를 비롯하여
주로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하는 공동체 주의와 같은 이론들이 그 예로 될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70년대에 극심한 노사대립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겪은 후 정부에
대한 과부하를 면해 주기 위한 거버넌스
개념의 도입으로 집단적 결정의 제도를 강조하는 데 이어서 일반 시민의 정책 결정 참여가 이루어 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코포라티즘의 제도에 의해 노-사-정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헌법 기관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은 아직도 노조들의 투쟁 대열이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개별 이익, 특정 집단의 이익이 더 우선시 되는 사회적
대립, 불신의 상황이 지배적인 사회이고, 아직도 정책 결정에의
참여를 요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전체 공동체의 가치가 정책 집행을 통해 실현되었는가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근래에 어느 미국의 정치학자가 정치에 대해 내린 정의를 소개하면, 정치란
다양한 이익과 견해를 가진 집단들 ( 공동체 )이 집단적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 이것은 그 집단 ( 공동체 )을 구속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며, 공동의 정책으로 시행되는 것이며, 그 정치과정은 설득과 협상, 그리고 집단적 결정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Miller )
주권 재민은 단순히 국민을 특정이익을 강조하는 법안의 합리화를 가져오기 위한 머리수로만 보려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의미에서 정책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정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 설득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정책은 창조적이고 현명해야 하며, 그
정책이 포함한 가치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한다. 그럴 때 치자와 피치자가 일치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허식적 제도만 강조되고, 사람에 의한 사람의
지배가 되면서 원시적 감정과 물리적 힘이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경우 그것은 현실 속의 악마적인 요소가 정치를 좌우하는 악마의 숲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정치는 다른 사람의 희생위에 자기를 주장하려는 사람들의 에고이즘에 빠진 것이다.
유럽에서 정치라는 단어와 정책이란 단어가 한 단어 ( politique,
politik ) 로 표현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정치는 정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역도
마찬가지로 다른 요소, 예를 들면 흑색 선전, 중상, 모략, 부정적 사회관, 등이
여기에 끼어 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전 일본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가 시작될
무렵,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 ( Pew Research Center
)은 일본 청년들의 여론을 조사하면서 이들의 3년 이후의 일본에 대한 견해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난 것을 제시하면서 그 전망에 우려를 표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청년들은 어떠한 가? 정치적 쟁투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경쟁적인
정당들은 일시적 편리함에서 집권 정당에 대한 비판에 몰두하려고 하면서 그 부정적 현상의 확산에만 매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전망적 표현이 가치나 목적을 제한시키거나 왜곡, 또는 전혀 이질적
요소의 돌출, 목적을 위한 무분별한 외국 사례의 모방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 그런 목표의 성공 여부를
떠나 그 사회적 파급력이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서구적 정의와는 다르게 동양적 의미의 정의도 매우 깊은 의미가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민이 아직도 한국 사회를 유교적이라고
보는 것이 43.6%에 달한다는 것이 좋은 유추를 가져올 수도 있다.
政治라는 것의 의미는 정자정야 ( 政者正也 ) 라고 해서 "바를 正"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동양의 전제 군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권력의 전제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만 보려고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민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 식견으로 갖추어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 정치란 국민이 잘 살수 있는 정치를 말하고 그 근본은 도리의식에 맞는 정치사회를 만드는데 있으며,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이상적 정신과 실천적 의식의 조화를 통해 정치-정책의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을 좋은 정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른 정치라고 하는 것의 오늘날의 내용은 국민의 정책적 대두와 더불어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가져 오도록 하는
정보, 지식의 제공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오늘날의
민주 시민은 그 정책적 학습을 통한 자기의견의 보편적 제시에 능동적 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복지 시대의 민주 시민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유혹에 따라 그 복지의 획득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능력과 책임의 맥락에서 정책 자원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원로 교수가 지적한 대로 정치학을 몇 년 이상 공부하면서 그 고개만 올라서면 정치라는 파노라마가 그대로
전개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치라는 판은 국민 모두의 삶을 책임 진다는 포용력, 그 정책적 포괄성, 그 전망에 있어서 원대성, 누구의 견해도 수용할 수 있는 관용성, 그 사회를 이끌어 갈 혜안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질로서 겸손과 책임성이다.
다른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정치를 본업으로 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존중 (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함한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국민의 운명을 제시하는 데서 겸손과 책임성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그 바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