않았으나 이 정책이 단지 9개월만 ( 2000-2007 임기중 )제대로 실행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 이유로 그는 Bush 정권의 등장과 이명박 정부를 들었고, 북한도 이에 저항적이었
다고 하고 있다. ( WSJ 과의 인터뷰, 2012, 6월 19 )
Bush 대통령의 거칠은 언행이 보여 주듯이, 2001년 3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후 있었
던 기자 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강조했던 김대중대
통령에게 불편함을 드러내었다.
이미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12월에는 노벨 평화상까지 주어진 상황에서 이루
어진 정상회담은, 문교수의 평가에 따르면, Bush 정권에 의해 햇볕정책이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에 일어난 9.11 테러 로 Bush 정권을 들러싸고 있었던 Neo-cons 들, Rumsfeld,
Cheney, Armitage, Bolton 등은 Bush 대통령을 강경한 군사 정책으로 나가게 만들었고,
2002년 년두 교서에서 북한을 Axis of Evil로 표현하면서 2003년 전후하여 북한에 대한 공
격설 까지 나돌 정도로 그 관계는 악화되었다.
문제는 한국이 햇볕 정책에 대한 외교적 설득을 미국에게 진지하게 시도한 적이 있느냐가
문제이다. 이 햇볕과 검은 구름과의 경쟁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것은 아니고 西歐
에는 더 널리 알려진 Fable 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인류의 보편적 지혜에 속하는 논리를 정책적 가치로 한 시도가 이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이에 대한 경험을 하나의 교훈으로 삼
아야 할 것이다.
이 정책의 집행과 남-북 관계의 진전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되풀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정책을 미국을 비롯한 우방에게 설명하는 과정에
서 단지 우리의 주장이 옳고 타당한 것이라는 것만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이
른바 그들의 conventioanl wisdom에 따라 설득한다면 더욱 쉽게 정책적 동조를 확보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일본에 대한 “위안부” 문제도 우리로서는 이 문제의
내용과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 위안부” 라는 표현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동조
를 획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힐라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마디로 표현한 “ Sex Slave "
는 모든 것이 함축된 용어로서 문제의 본질적인 성격도 잘 표현하면서 이것이 여성의 인권
을 국가가 유린한 대표적인 문제로 적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베가 유엔에서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 하기 전에 이 ‘위안부“ 문제를 UN에 여성 인권의
유린 문제로 먼저 제기했어야 할 것이다.
진보주의자 들의 미국관
WSJ의 기자가 문정인 교수에게 그가 쓴 책에서 미국에 대해 모든 탓을 돌렸다고 지적하면서 왜
북한은 미국에 관심이 많은가 하고 묻자, 문교수는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을 거론하면서 미국
이 평양과 북한을 공군의 공격으로 파괴했음을 지적했다. 또 미국만이 북한을 파괴할 수 있
을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지적했다. 두 번째로는 북한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전
시 작전권을 미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괴뢰에 지나지 않고 모든 것을 미
국이 다루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평양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국은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미관계의 인식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한국전쟁을 언급한 또 하나의 학자는
Bruce Cummings 다.
그는 2013년 5월 미국 UCLA 의 한국연구소에서 열렸던 “한국 전쟁의 종식”을 주제로 한
회의에서 미국의 지난 60년간의 대북 정책은 핵 위협과 주기적인 위기의 조성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면서 변화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면서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떨어트렸던 것보
다 더 많은 폭탄을 한반도에 떨어트렸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 503,000t : 635,000t ) 미
국이 이 전쟁에서 엄청난 파괴를 저지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위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미국에 대한 인식이 주로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행한 엄청난 파괴
를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대규모의 개입이 있은 후 연합군은 그 병력의 열세를 엄청난 화력으
로 대응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Bruce Cummings 는 한국 전쟁을 Civil War 로 보려는 대표적인 사람이며, 70년 대는
Robert Simmons 와 더불어, 한국전쟁을 냉전시의 강대국 들간의 국제관계에서 비롯된 것으
로 보는 정통적인 입장과는 다른, 곧 민족 내부의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 학자들의 글이
많이 나왔다.
사실상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은 이 전쟁이 civil war 이며, 따라서
외부 국가들의 개입을 막기 위한 논리로 이러한 주장을 했었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곧 한반도에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승만-김구의
대립적 관계의 조명을 통한 분단의 설명을 시도하려는 진보주의적 일단을 낳게 만들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과 대조하
여 보면 이들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
다.
얼마전 개성공단의 문제로 대립되었던 남-북한 관계가 풀리는 단계에서 다시 이산 가족 상
봉문제와 금강산 관광 문제로 남-북은 대결 상태로 돌아 갔다.
북한이 문제로 제기한 것, 또 우리가 원칙으로 강조해야할 것 등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분석이 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다.
남-북한 간에 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에도 2년 후인 2002년 남-북한 간의 서해 교전이
있었다.
오히려 북한의 관심은 최근 시리아와 이란이 각각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포기하는 입장을 취
하고 미-러의 관계회복에 의한 국제질서의 강조에 두어지고 있는 데 있다고 볼 때, 이런
상황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고 제재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리비아사태가 보여준 결말은 그 포기를 쉽게 결정하도록 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