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11 12:23
좌파-우파, 한국적 쟁투: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냐? ( 7 )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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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식  | 2012·04·15 11:21 | VOTE : 58 |
복지문제는 좌파의 전유물인가?
알려 지기는 복지문제 선구자는  프러시아의 보수적 정치인이었던 비스마르크 (Bismarck) 이고 그가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1883년에 병자에 대한 사회보장, 1884년에 노동 사고에 대한 보장, 1889년에 불구자 및 병자에 대한 사회보장 제도를 창설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적인, 또는 교회의 자선을 넘어서서, 보편화되고, 통합된, 공적인 기관에 의한 보장의 개념으로 이것이 변화된 것은 영국의 비버리지 (Beverige) 가 작성한 보고서 ( 1942年 )에서 Welfare State 의 개념을 제시되고 모든 시민의 보편적 보장을 위한 제도를 제안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부의 재분배와 같은 개념에 의한 사회보장이 자리 잡게 된 것은 2次.대전 이후이며, 20세기 初半 에 이르러 그 비용이 GDP 의 50%가 넘는 유럽 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적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이러한 국가의 개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는바, 그 하나는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뒷받침할 만큼의 경제 성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이에크 (Hayek) 와 같은 경제 학자들의 주장, 곧 국가 개입이 시장경제의 기능을 저해한다는 논리 등이다.
70년대부터 제기된 이런 문제에 대해 복지국가를 옹호하는 논리에서 유럽 위원회 ( Conseil de l'Europe )는 복지국가의 사명을 단순히 사회보장이라는 것에 두기 보다는 공중의 책임에 의한 '모두의 복지 ( Bien-Etre de Tous,)'를 목적으로, 따라서 '사회적 단결 ( Cohésion Sociale )'을 위한 전략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사회보장 정책에서 이처럼 사회 통합적 의미를 강조하는 추세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부의 평등 분배와 관련된 '정치경제학'을 좌파들은 주로 맑스 에게 그 개념의 시발을 두지만, 프랑스의 문헌을 보면 'Economie Politique' 은 1615년 몽크레띠앙 (Antoine de Montchrestien,  1575-1621 ) 에 의해 저술된 책의 제명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16세기에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출현에 따라 국가에 대한 관념중에 국민의 물질적 필요를 만족( Bien-Etre ) 시키는 문제가 중요시 되었고, 그 지도자에게 국민 또는 국가의 복지를 보장하는 방법을 건의하는 목적에서 그 정치적 기술과 관련된 분야로 몽크레띠앙이 만들은 용어이다. ( Traité de l'Economie Politique, 1615 )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에 의해 인간을 사회에 적응하려는 정치적 동물로 보고, 그 인간이 하나의 가족에 속한 存在로 그 가족을 잘 관리하기 위한 기술로서 경제라는 말을 이용하고 그것이 사회의 순기능을 위해 필요하며, 결국 사회의 경제에서의 국가의 개입을 의미하는, 곧 부 의 창출을 위한 기술로서 국가가 경제를 관리하는 규율을 포함한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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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레이몽 아롱이 “지식인의 아편”이란 글을 썼던 1955년은 프랑스에서 좌익이 1947년부터 1951년까지 의회를 장악했고 ( 의석의 52% ) 공화국 대통령직도 ( 좌파 Vincent Auriol )장악하였고, 전후 두 번째 선거에서는 야당이 되기는 했으나 1958년 드골의 5공화국 헌법이 등장할 때 까지 그 좌파세력이 위세를 누리고 있었던 때이다.
국제적으로도 유럽의 좌익 세력들이 1950년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평화호소 국제 모임을 주도하면서 NATO와 미국에 대한 반대 선전을 격렬하게 하고 있었다.
아롱 이 이 글을 쓴 이유를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러한 좌익적 활동과 투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또는 못 본체 하려는 태도를 취한데 대한 비판적 욕구에서 생겨난 것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단순히 비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위가 아니며, 그것은 비판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진보주의자 로서 이들 공산주의자 들이 제시하는 것은 그 과정의 결과로 장래에 전개될 것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 되라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공산당이 마치 도그마적인 교회와 같이 혁명과 폭력의 교회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오리올 (Auriole) 좌익 정권이 집권한 후 4년 동안에 무려 13명의 수상 이 교체되는 등 불안한 정정이 계속되었고, 또 Vietnam 전쟁에서의 패퇴와 같은 외환이 겹치게 되자 결국 5공화국의 새 헌법에 따른 드골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이 출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좌파적 경향의 움직임은 이미 제도권 정치에서 뿐 아니라 종교, 사회인도 포함한 범위에서 論議되는 주제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프랑스처럼 기독교적 배경이 큰 역활을 핳 것을 기대하기는 힘 든 만큼, 좌파가 사회적 분열을 의도하는 계급적 논리를 주장하는 것을 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할 것이다.
마치 프랑스도 그 경제 발전을 위해 프랑스 국민 전체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 듯, 이런 발전을 위한 개혁을 보수적 선거인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비록 증오와 악의와 투쟁을 중요시 하고, 이념적 논쟁을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관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들로부터 동조자를 얻어내고, 그 사고와 감정에서 국민적, 가족적인 結合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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