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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1-18 15:48
미-일관계와 관련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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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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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기씨 에게,
어제 명기씨에게 답글을 쓴다고 하다가 실수로 본문과 꼬리글을 전부 사라지게 했고, 다시 부랴부랴 본문 만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 답글에 이런 글을 올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외교사를 배울 때, 1907년 미국과 일본 군국주의자 들 간에 ( Taft-가쯔라 조약 )세력권을 설정하면서 필리핀은 미국에, 한반도는 일본에 각각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미국의 세력균형의 논리에 따라, 합의를 했고, 이후부터 미국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한반도, 만주, 그리고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도록 유도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다시 필리핀을 공격했고, 1941년 12월에는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미국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그때부터 일본군국주의자들과 4년여에 걸쳐 이른바,- 2차대전 와중에-, 태평양전쟁을 통해 미국의 젊은이 40여만 명이 살상을 당하는 희생을 치르면서 전쟁을 끝냈습니다. 아미티지 자신도 군인 출신이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는 아베에게 경고를 했다는 말을 듣고, 또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일본인들에 대한 일본 각료의 참예가 마치 한국인, 또는 중국인 만의 관심이나 문제인양 언행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실을 아미티지에게 분명히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태평양 전쟁 기록 영화, 미국 해병대의 전투를 주제로 한 영화, 케네디대통령의 PT boat를 주제로 한 영화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사고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현실적인 필요가 더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인과 일본인 들은 역사적 사실과 그것이 주는 의미를 무시하고 부인하는 데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자면, 미국이 한국에 주둔한 군대를 1949년에 철수를 할 때,미 육군은 공산세력이 장악한 대륙과 적대행위가 벌어질 때 한국에 있는 미군이 “pinned down" 될 가능성을 그 이유로 내 세웠습니다. 중국의 군사적 강화와 북한의 핵무기 보유의 상황이 그 당시보다 더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볼 때, “ pinned down" 논리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하겠습니다.. 미국이 중국 전략가로부터 배운 以夷制夷의 방책을 일본과의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 채택한 것이라면, 이것은 ‘ pivot to Asia' 정책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 소극적인 자세는 결국 동아시아의 변화 국면에서 미국이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일어난 필리핀의 재난에 중국이 대국답지 않게 극히 작은 지원을 한것에 대해 많은 논난이 있으나, 뜻 밖에도 이것은 중국 지도층의 결정이 아닌 중국 일반인들의 여론이 원하는 것이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인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에 해가되는 언행에 대해 명백한 태도를 선택한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게 유수의 경제연구단체나 정보 기관들이 예측한바와 같이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 예를 들어 GNP 상으로 ) 앞설 것으로 보는 기간이 7-8년으로 닥아 와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내세워 아시아를 접근하려는 것이 그 결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이 경제적 강국으로 남는 경우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또는 중국이 앞서는 경우 동아시아의 상황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적인 면 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한계는 -중국과 관련하여- 특히 동아시아인들에게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 문화의 정수는 중국 문화이며, 이것이 동아시아에 오랜 역사를 통해 영향을 주어 온 것은 사실이며, 일본 문화는 아시아의 주변적 문화로 서양문화와 접촉하면서 쉽게 도태되어 서양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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