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 정당의 특징
재작년 9월 30일 자 The Atlantic 紙는 “ 공화당, 보수주의를 포기하다 “ 는 제하에 Eliot Cohen ( Johns Hopkins Univ. Dean ) 의 글을 실었다. 내가 Cohen 의 글을 언급한 이유는 그가 Dictum 이라고 소개하는 구절이 내가 프랑스의 책들에서 많이 보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 If one is not of the left as a young person, one has no heart, and not of the right in middle age, one has no head.”
이 글에서 Cohen 은 평생 동안 공화당의 가치와 원칙을 지지하였으나, 공화당 ( 미국 ) 과 보수적 신념 간의 訣別은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E. Burke 로부터 Kristol 에 이르는 사상가 들을 칭송하는 데서 자주 인용되는 책임, 금욕, 자기통제, 충성심, 절제, 명예, 인격, 그리고 자주성을 언급하면서 이들 보수주의자들은 도덕적 원칙의 이름으로 자신을 세우려는데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다.
그는 Trump 의 대통령 당선 이후 공화당을 탈퇴하고 Trump 대통령의 대내-외 정책을 비판하였다. 그는 Reagan 대통령과 Trump 대통령의 정책을 비교하면서, Trump 대통령이 입법부의 입장을 경멸하면서 행정부 중심적인 정책 진행을 하는 것을 비판하고 미국과 동맹국 과의 관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적 정책, 등을 예로 들면서 Reagan 대통령의 대외 관계에서의 관대함, 국내 정치에서의 당당한 정책 추진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 정치에서 노예문제 등과 같은 어두운 면이 있었으나, 이제 다시 그런 것들이 현실에서 역병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면서, 보수적 정당으로서 공화당이 다시 복구하리라는 전망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Taft, Buckley 등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도덕성의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세우려는 것과 같이 보수적 정당이 등장할 것을 언급하면서도 그 지도자의 등장과 그 시기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고 있었다.
한국 보수당의 참패
최근 미국의 정치평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에 Oxymoron 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Liberal 과 Conservative 를 연결시킨 단어로 쓰면서 이것이 Oxymoron 이 아닌가 하는 제목으로 Gleaves Whitney 가 쓴 글이 있다.( Is a "Liberal Conservative" an Oxymoron?, 2019, 08.08 ) 이 자유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은 서로 그 의미가 반드시 모순은 아니라도 서로 대립되는 두 정책적 의미가 하나의 통합된 의미처럼 표현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도 한다.
이미 역사적으로 보수적인 Disraeli 가 1850년 대에 이 용어를 사용하였고, 최근에 한국에서도 이 용어를 언급한 사람이 있었다. 정책적으로 대립되는 의미로 이해되던, 이를 테면, 진보주의자들의 자유주의적 의미와 보수적 정당들의 보수적 정책이 결합을 한 형태로 나타난 이 용어는 20세기 이후로 사회 복지 정책은 더 이상 진보적,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고, 의료제도에 대한 보수 정당들의 적극적 정책으로 국민의 호응을 얻으려는 대상이 되게 된 것에서 그 좋은 예로 되고 있다.
Birzer 는 이 liberal conservatism 을 하나의 선견지명의 가치를 가진 것의 예로 보고 있다.
Samuel Goldman 은 1936년에 F. Scott Fitzgerald 가 제시한 명제로 보수주의를 명확히 하려 하고 있다. Fitzgerald 는 一流의 지식인을 검증하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동시에 대립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면서, 예를 들어, 절망을 하면서도 그것을 희망적으로 되도록 결정을 내리는 것, 또 그렇게 되도록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검증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Is a Conservative Crack-up on Horizon? May 4, 2017 )
Goldman은 Fitzgerald 가 자기가 제시한 명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일류 지식인도 이런 Paradox 에 대해 이해의 제한적인 능력 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지식과 의지는 균형잡기가 불가능하다고 하고, 보수주의가 미래에 대해 일관된 논리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보수주의 내부에 있는 한계적인 근본적인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것은 자유주의와 전통주의 간의 낯익은 구분으로 축소될 수 없으나, 단순화 시켜 보자면, 이것은 자유주의와 복고 ( Reaction ) 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Mark Lilla 는 Reaction ( 復古, 또는 反動 으로 해석 ) 을 현재의 퇴폐적 환경을 바꾸고, 이상화된 과거를 회복하려는 憧憬으로 표현하면서,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복고 ( 반동 ) 를 보수주의적 경향과 구분하여야 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소중히 해야 힘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4월 15일에 있었던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문재인의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한 총 300 석의 의석 중에서 최종적으로 177석을 확보함으로써 보수야당인 한국당을 제압했을 뿐 아니라 과반을 27석을 넘는 대승을 거두었다.
한국당의 참패의 원인을 구태어 언급하기 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계속된 한국당의 구심점을 잃은 혼돈과 인물난, 선거를 전후해서 한국당이 보인 개별적 실수, 윤리적 결점 등이 이 결과를,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대승을 헌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의 집권시 부터 보수당으로서의 한국당( 새누리 ) 정권이 보인 행동은 보수당으로서의 正體性을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느냐 하는 데서 출발하여,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내의 분열, 그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은 뚜렷한 정책적 의지나 신선한 정책 내용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식적인 야당 대표가 보였던 단식 투쟁, 삭발 등으로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을 뿐이다.
더구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입한 전 군사정권 노태우 대통령 의 비서를 했던 사람의 역할은 애매 모호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참모로도 등장했던 그는 진보당의 정책으로 경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제시했었고, 이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당인 한국당의 선거 참모로 또 등장하면서 그 자신은 물론 유권자들을 혼란으로 몰아 갔다.
선거를 지휘하면서, 국회의원 선거등에서 계속 참패를 했던 그가 보수당의 재건을 위한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아이로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30여년 간 계속된 군사 정권의 권력 속에서 기용이 되었던 민간 정치인들은 단지 군인들의 권력 장악 아래 행정적 부문에서 행정적 효율성의 극대화에서의 기여를 통해, 행정인 으로서의 자기 합리화를 추구하는 관료적 역할에 익숙되어 있었다.
정부의 권력은 궁극적으로 국민으로 부터 나오고, 그 권력은 국민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라는 것을 이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었다.다행인 것은 21대 선거를 통해 보수진영에서 복고적이고 반동적인 정당들이 퇴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수의 의미와 정책적 특성
미국 보수주의 의 원로인 Russell Kirk 는 Conservatism 이라는 명사를 쓰기 보다는 Conservative 라는 형용사로 쓸 것을 주장했고, 이것을 좌, 우의 이념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마음의 상태, 시민 사회 질서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보기를 원했다. ( The Conservative Mind ) Nisbet 도 미국에서 좌, 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 Conservatism 을 이념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에서는 진보, 보수 정당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이고 좌, 우 라는 표현은 잘 쓰이지 않고 있다. Peter Berkowitz 는 2008년에 쓴 글에서 The European Left and Ours 라고 미국의 좌파를 지칭하면서 유럽 좌파와 비교를 하고 있는데, 주로 Sanders 와 같은 유럽좌파를 통해 사회주의를 비교하려는 입장에서 언급하면서 예를 들어 미국의 사회주의는 유럽의 초기 사회주의 단계라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의료제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며, 역사적 유럽 사회주의의 발전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Nisbet 가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의 보수주의의 시발을 Burke 에서 찾고, 또 사회주의의 시발을 Marx 에서 찾는 다면, 프랑스에서 경제적 보수주의의 원로 ( Economie Politique )로 일컬어 지는 Antoine de Montchrestien ( 1575-1621 ) 의 존재는 의미가 없게 된다.
유럽에서 군주를 중심으로 좌측에 신흥 상공계층, 우측에 토지 지주 및 귀족 계층을 둔 삼부회의의 구성에서 시작된 좌, 우의 개념은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개념과는 그 사회적 의미가 다르다.
Stephen Tonsors는 보수주의가 전통을 중시하지만 그 전통의 라틴어 어원을 통해 그 전통 ( tradere )이란 것은 그 의미가 성스러운 것, 선 한 것, 좋은 것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쓰였던 것을 지적하면서,중세의 교회, 대학 등이 중심이 된 비 정치적 분야 곧, 예술, 문학, 삶에서 중요시 되던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Equality, Decadence and Modernity, ISI Books, Washington 2005)
미국에서 Kirk 가 보수주의를 언급하면서, 보수주의는 전통 만으로 사회를 이끌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를 통해 내려오는 양심과 지성을 더 발전시키는 건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의 경험의 역사적 연속성과 지속적인 도덕적 질서가 필요하며, 도덕적 진실은 영구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들이 중년기에 들어 서면서 폭력적 공산주의를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적 인식의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스페인의 공산당 총재 Santiago Carillo가 쓴 "Eurocommunism et Etat" 에서 사회주의로 이르는 길은 반드시 Soviet 적인 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서유럽 국가들의 독자적 이론을 제시한 것은 Soviet Communism 의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할 수 있다.
Raymond Aron 이 공산주의 폭력혁명을 위한 계급 개념이 필요한 것으로 공산주의자들은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나 그는 프랑스에는 계급 개념이 없고 계층 ( Couche ) 만 있을 뿐이라고 한 것은 위와 같은 취지를 가지는 것이다. Berkowitz 가 지적한 것처럼, Levy 나 Sarkozy 가 유럽 좌파들의 노쇄성을 노리고 그 후 Sarkozy 가 집권하게 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1976년 이후 유럽 좌파들은 그 노쇄성으로 인해 상실한 국민들의 신뢰감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변화를 꽤 해야 했다. 그들은 새로운 Image로 유권자들을 사로 잡아야 했다. 2007년 있었던 Sarkozy ( 右 )와 Royal ( 左)의 TV 대선 토론은 치열했고 Royal 이 Sarkozy 를 K.O. 시켰다고 언론이 떠들었지만, Sarkozy 는 무난한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에서는 중도 우파가 계속 집권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중도 좌파가 승리를 거두는 모습도 있었다.
결국 국민의 6-70 % 에 달하는 중산층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공략하느냐가 그 승리의 관건이라는 것은 자명하다.이제 극좌나 극우가 득세하는 것을 보기는 더 힘들어 졌다.
한국 보수정당의 선택
사실상 미국의 보수당도 분열의 상태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미국 보수주의의 원로격인 Kirk 는 Bush 대통령과의 대외 군사적 개입 문제로 불화를 겪었고 1994년에 타계를 했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Cohen 도 Trump 대통령과의 불화로 공화당을 탈퇴를 했다.
Gleaves Whitney 는 미국의 보수주의가 Regress, Fractious 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에서의 기독교적, 계몽적, 낭만적 특성의 근대성의 태양이 그 빛을 잃고 후기 근대주의의 달이 뜨자 미국인들의 신념, 신앙적이고 정신적인 힘을 흐리게 하는 어두움의 시기로 들어서게 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을 다시 신념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의 기반과 관련된 보수적 신념을 다시 계발하고, 더욱 융합을 이루면서 생산적 긴장을 통한 보수적 가치의 실현을 촉구했다.( How can we form a more perfect union in our fractious Age? 2020, 04, 14).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결과를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 패배의 성격과 원인을 밝히는데도 도움을 줄 수가 있다.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84석의 의석을 획득했다 .이것은 보수당이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20대 국회의원 선거 ( 2016 )에서 이미 민주당에 뒤쳐젔음에도, 그래도 122석을 확보했던 것에서 보아도 참패였고, 비례대표 19석을 제외하고 지역구를 보면, 대구 11석, 경북 13석, 경남 12석 으로 한국당이 획득한 의석 수의 절반 이상을 영남 지역에서 획득하고 있다. 한국당은 호남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반면 민주당은 대구지역에서 의석을 얻지 못했을 뿐 경남, 부산, 등지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당의 서울, 경기 인천 등, 인구의 반 이상이 있는 수도권에서의 득표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한국당의 원내 대표 선출에서 대구 서울에서만 후보자를 냈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배출해 낸 대구에서 원내 대표가 나왔다. 선출된 원내 대표는 선거를 책임졌던 인사를 다시 기용할 의사를 보였지만 이것은 너무 완만하고 위기 의식이 결여된 생각이다. 좀 더 많은 인사들과 견해를 교환하고, 보수 정당의 正體性을 확립하기 위한 폭넓고, 장기적인 포석을 펴려는 수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보수정당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Precursor 를 구하는 것이다. 단순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위기를 극복하고 보수의 가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물론 당원들에 대한 윤리적 기강과 당 정책의 강력한 동조를 가져 올 수 있는 개혁적 선도를 이끌어 내어 국민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보 여당을 극복하기 위한 이념적 파악이 이루어 지고 이 위에 보수의 가치를 극대화한 정책 넥서스를 형성할 정책 집단을 구비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보수당은 6-70%에 달하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만큼 이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 여기에 왕도나 파나세아는 없다. 국민의 관심의 맥을 놓지지 않고, 그 변화의 추세를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개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크롱이 실천에 옮긴 방법이다.
선거 기간 전후하여 지도급 인사를 4-5명을 교체하면서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결국 시간만 허송한 결과로 나타났고, 이것이 좋든 싫든 당의 停滯性, 매너리즘에 빠진 당 기구의 안이한 운영을 가져왔고 결국은 해당적 현상으로 흐르도록 했다고 보인다.
이제 보수당의 Precursor 를 확보하는 문제는 정당만의 부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국의 차원에서 보수의 근간을 재건하고 나라의 기강을 다시 바로 잡는 차원에서 실천에 옮겨야 할 과제임을 인식해야 항 것이다.
마지막으로 Tonsor 가 그의 책 서문에서 쓴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문화와 문명은 합리적 목적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보다는, 평범한 인간들의 필요와 인류의 추구를 총합한 것에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들이 추구하는 질서, 안보, 사랑, 아름다움,과 진실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사회는 개인적 욕구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유지된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