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1년 7월 9일, Kissinger 의 중공 (당시 ) 방문, 그리고 주 은래 와 의 회합은 미-중공 간의 화해로 이어졌고, 당시 이것을 추진했던 Kissinger 는 워싱턴의 정가에서는 현실주의 자( Realist )로 평가 받고 있고, 지금도 그는 미-중국 간의 경쟁관계 속에서 전쟁은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따라서 평화적인 공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간에 벌어지는 최신 줌발트미사일함 등을 동원한 미-중 간의 군사적 활동은 자유항해를 내세운 미국과 영토 주권의 수호를 내세우는 중국간에 공존을 위한 새로운 관례를 정립하려는 치열한 경합의 산물이다. 중공은 1964년 첫 핵 실험을 했고, 67년에는 수폭 실험, 그리고 1996년 까지 핵 실험을 계속 하다가 핵실험 금지 조약을 조인했다. 이보다 앞서 중공은 1970년 1월 20일 핵무기 비확산 조약에 가입하였고, 1971년 핵탄두를 장착한 DF-3A 16 기(3,000 km )를 배치하였다. 1970년대 초부터 UN 에서의 중국 대표권을 획득하기 위한 중공의 노력은 비동맹국가 ( 77그릅, 제 3세계 ) 들의 지지를 얻어 1971년 10월 25일, 알바니아의 결의안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70년대 초반에 중국은 핵 무기의 확보, 그리고 비동맹 세력을 동원한 UN 에서의 지지세력을 이용하여 미국을 압박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Kissinger 의 현실주의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가져오고 이를 통해 미-소 관계에서 중-소 분쟁을 이용하여 소련을 견제하는 이득을 가져왔다. 7차 당 대회를 개최하면서 김 정은을 비롯한 핵심세력들이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무엇일가? 김 정은이 2013년 3월 당 중앙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병진로선이 그 대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관심의 내용은 각기 차이가 있다. 7차대회 결정서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병진정책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구적, 전략적인 로선이며 이를 계속 철저히 관철시켜야 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오직 핵 로선 만이 정책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 핵 무력의 문제 북한의 핵 무기문제는 김 정일 때로부터 제기되어 1차, 2차의 핵 실험을 감행해 왔다. 2011년 12월 30일부터 권력을 승계하기 시작한 김 정은은 3차 ( 2013 ), 4 차( 2016 )의 핵실험을 하면서 수소탄, 광명성 4호 발사 등을 내세워 핵 무력 건설에 몰두했다. 북한의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중국이 발의했던 6자 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더 이상 열리지 못했고, 북한의 핵실험은 계속되었다.김 정은이 집권한 이후인 2012년 4월 13일 북한은 그 헌법을 개정하여, 핵 국가임을 명시하면서, 2013년부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명백히 하였다. 북한의 핵 실험 및 그 프로그램이 주는 위협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그 위협 행위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여 결의안을 채택하여 왔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는 2006년부터 지난 3월 까지 총 12 차례의 결의안을 채택하여 북한을 고립시키면서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해왔다. 북한의 핵 위협은 핵 탄두의 소형화를 통한 미사일에 의한 공격 가능성과 관련되는 것으로 소형화와 미사일의 개발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 중 은하 3호, 대포동 3호 등은 12,000 km 의 사정거리로 미국 서부 지역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며, 최근 (지난 4월 )에 발사에 실패했던 무수단 미사일은 3,000km 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어 괌 지역의 미국을 공격권 내에 두고 있다. 북한의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4 월에 한국 정부는 북한의 5차 핵 실험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무기 프로그램의 추구는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핵탄두의 소형화, 그리고 이동 탄도미사일 ( KN-8, KN-14 emd )의 개발 등이 계속 되고 있는 정향을 지난 3월 Gortney Jr. 제독의 (미국 북부 사령관) 의회 증언에서 알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당대회 개최 직전에 실패로 끝난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그리고 Gorae 급 잠수함에 의한 SLBM 미사일 발사 시도 등의 의도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북한이 핵중심의 무력을 강화하는 입장에서 지난 당대회 후에 한국에 제의한 군사 회담은 어떤 내용을, 또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관심을 집중하게 하고 있다. 5월 당 대회에서 북한은 당 규약에 핵 국가 임을 명확히 하고 핵 무기가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을 밝힌 것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당분간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대회에서 북한이 핵 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 그리고 ‘다른 핵 무기 국가가 북한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 이라는 전제로 사용하지 않을 것 그리고 비확산의 의무를 지킬 것 등을 선언한 것은 핵 보유국으로서 핵 군축에 관한 논의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김 정은의 등장 직후 Obama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 의사를 밝혔슴 ( leapday agreement )에도 불구하고 2013년 2월 핵실험을 단행한 것은 북한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09년 Prague 에서 제시한 negative security assurance 는 북한이 제기한 미국의 핵 위협에 대한 보장으로 Obama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었다. ( no. 209, 2014. 02. 18 동숭 칼럼 참조 ) 5월2일자 NYT 사설은 북한이 현재 핵 폭탄 20여기에 충분한 핵 분열 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고, 특히 올해에 핵 활동을 강화한 것을 주목하면서 핵 로켙 엔진의 강력화와 핵 탄두 소형화의 성공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북한의 핵 위협과 야망에 경계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 경제 발전의 추구 김 정은 의 병진 정책에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실제적으로 핵 정책은 김정일 이래의 계승적의미가 강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오히려 경제 문제에 관한 입장이 김 정은이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정책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 정은의 현지 지도의 보도를 보면, 식량문제, 산림 황폐화의 문제 등을 거침없이 지적하고 인민의 생활 경제가 뒤떨어진 것을 한탄한 것 등, 그 정책 실패를 언급한 것으로 볼 때, 그러한 문제들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경우 정권의 안정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정은이 1990년대에 청소년 시절, 서구에서 해외 유학을 7-8년 간 한 경험은 이러한 인식을 지니도록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7차 당대회에서 언급한 5개 년 경제발전 계획이 2020년 ( 8차 당대회 예정 )에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그 상세내용이 매우 궁금한 상황이나 일부 연구자들은 김정은의 시각이 종전의 생산 중심의 성과발표에 중점을 두었던, (예를 들어 00% 목표 달성 등) 경제 계획이 소비자 중심의 상품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Ruediger Frank, 38 North May 20, 2016) 그는 김 정은이 매우 현실적인 입장에서 이 계획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국제적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자체 조달, 자력 경제 등이 반복 강조될 수 밖에 없으며, 그 계획에 필요한 해외로 부터의 자본 유치, 또는 외국과의 무역 문제는 현재의 유엔 안보리의 제재 상태에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Michael Madden 은 당 대회에 따른 당 제도의 변화, 예를 들어 비서국을 폐지하고 정무국을 신설한 것 등이 김 정은의 경제적인 실질적 활동을 추구하기 위한 당의 제도적 장치의 변화로 보고 있다.( 38 North May 20, 2016 ) 경제 운용에 있어서도 기업 중심적인 언급, 또 개인 텃 밭 생산의 시장과의 연결, 그리고 에너지 문제의 중, 소 규모의 시설 강조 등을 통해 분권적인 방법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는 외국 연구자 들도 있다. 다만 북한의 이러한 계획에 따른 발전은 한국의 개입의 가능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또 남-북 간의 또 다른 경제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의 개선, 협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80년대 초에 경제 현대화를 추구할 때 외국 연구자들이나 언론은 중국의 시장 자본주의화를 성급하게 예단했던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의 중국의 상태는 그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북한도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를 강조한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것은 김 정은의 당 대회 최종 연설에서 “ 인민을 우선” 하고, 인민에게 봉사하는 것 등을 강조한 내용을 외국 분석가들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당을 강조하고 지도자들을 강조하는 충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을 지적하고 있다. ● 남-북한의 정책적 갈등 ( Clapper 의 방문 ) 당 대화가 끝난 직후부터 북한은 한국에 대해 대화-협상 공세를 펼치고 있다. 북한 당 중앙위원회, 국방위원회, 대남 기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화-협상을 제의하고 있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정치-군사적 도발, 전쟁 연습 등의 중지, 연방제 방식에 의한 통일의 실현 등 종전의 사항을 그대로 담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22일자로 발표된 조평통 서기국장의 담화에서 북한은 “핵 포기” 등의 전제를 달지 않고 대화와 협상에 나오라고 한국에 통보한 것이다. 이것은 20일 국방부의 명의로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해 “비핵화의 우선적 조치”를 강조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다. 북한의 기존의 입장은 핵 문제는 미국과의 논제로만 다루려는 것이었고, “핵 포기”를 전제로 하지 말라는 것은 핵 문제를 제외한 남-북한 간의 군사회담을 의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 제의를 6.25 이전에 회담을 할 것으로 예정한 시한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제의 후반에는 곧 북한의 “과감한 실천적 조치가 “ 있을 것, 또 제 2의 6.25 전쟁 등을 언급하면서 위협적 언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언론은 북한의 제의를 한번 들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 다는 입장에서 회담을 받아 들일 것을 권하고 있다. ( 동아 ) 핵과 미사일의 무장으로 강력해 진 북한의 입장에서 군사회담은 북한으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핵을 제외한 군사 회담에서 논의될 내용은 북한의 강조해온 “전쟁 연습의 중지 ( 한-미 군사 훈련을 지칭 )“ 더 나아가 미군의 철수 등이 대표적인 의제일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에 남-북의 상호 비방 금지의 합의를 파기하고 남북한 간에 진행되는 긴장적 상황에 대한 책임 전가를 위한 논의의 전개 등이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북한은 남-북한간의 회담이 열리는 것을 통해 국제 사회에 남-북긴장을 완화시키는 북한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봉쇄와 고립의 국제적 망을 돌파하려는 의도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상 공세가 별 효과를 보지 못할 때 취할 수 있는 북한의 가능한 대안은 ? Clapper 국장의 한국 방문은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5월 4일부터 1박 2일의 일정으로 방문한 Clapper는 한국의 안보관계자들과 만나며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한 평가를 위주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언론에 의하면, Clapper가 미-북한 간의 평화협정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해 10월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한 후 지난 해 말에 북한이 미국에게 이 문제를 들고 접촉을 시도한바 있었고, 이를 WSJ 이 2월 에 보도 한바 있으며, 이는 다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올 2월에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를 제의하면서 쟁점화 되었다. 미국은 북한의 제의에 비핵화를 행동으로 먼저 보여 주기를 요구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밝혔으나, NYT 는 5월 2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평화협정의 제의를 민첩하게 받아들이고, 그 제의를 창조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제의를 하는 NYT는 김 정은이 당 대회를 통해 정권의 안정을 기하고 핵 억지에 자신감을 느끼면서 평화협정을 제의할 것으로 전문가들의 입장을 들어 주장하였고, 여기에 지난 4월에 있었던 무수단 발사 시도를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만으로 그 위협을 경감시킬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김정은을 경험없고, 무모한 지도자로 보면서 NYT는 그를 코너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며,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여 더 위험한 반응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NYT 는 미-일-한-중-러 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한 협상을 재개 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바마 정권 말기의 선거 상황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도 이 사설은 그 기회를 당 대회 이후로 언급하고 있었다 ● 고도를 높이며. 미국이 평화협정의 논의를 거론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긍정적인 신호로 보아야 하는가?. 남-북한 간의 상시적인 정책 갈등, 대립의 차원을 떠나서 한반도의 평화를 구상하는 것은 구름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인가? 미국은 북한이 당 대회를 끝낸 후 협상 공세로 나올 것을 예상했고, 북한도 당 대회 후 한국에 대한 대화공세를 퍼붓고 있다. 늘 그렇듯이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의 신호로 남-북 대화가 열리면, 미-북한간의 논의도 열리는 방식은 북한도 이제는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반도 문제 논의를 위한 몇가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논의의 명제를 살펴 보고자 한다. 우선 그 첫째는 NYT 도 암시하듯이 제시한 6자 회담의 형식이다. 누누히 강조된 사실이지만 이 회담의 틀은 2003년 중국의 장쩨민의 제안으로 나와 처음은 3자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의 형식으로 2009년 까지 열렸으나 그 이후 북한은 이 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 형식의 회의를 북핵에만 제한시킨 것이 아니라 동북아 안정을 강조하는 안보 협의체로 보면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 발전을 위한 안정과 평화의 협의기구로 발전시킬 것을 의도하고 있다. 북한이 6자 회담에 응할 것인가? 북한의 평화협정의 논의는 그 대상을 미국으로 한 것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둘째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우선 순위다. 미국은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행동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핵 문제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립의 포인트는 쉽게 해결될 접점이 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행동으로 북한이 IAEA의 감독을 받아 들이거나, 또는 NPT에의 가입을 선언하는 것등 에서 첫 고비를 넘길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왕이가 제시한 병행 논의 ( 비핵화와 평화협정 )는 북한의 입장에서 바람직 한 것일 수 있다. 셋째는 Clapper가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정부의 양보의 한계 이다. 이런 질문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미국 내에서 미-북한의 협상에 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미-북한 간의 관계는 1994년의 Agreed Framework를 체결한 내용에서 대부분 그 관계의 진전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구태여 양보라는 의미를 들어 의견을 묻는 것은 이러한 통상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협의를 암시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핵 문제에 관한 미-북한 논의의 합의의 정도에 관한 것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핵 문제와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핵 문제에 관한 완전한, 또는 핵 무기의 제거를 포함하는 합의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문제이므로 그것의 병행 논의는 실제로 그 시작에만 의미가 있을 뿐 결과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는 미국의 정책적 개입의 폭의 문제이다.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기본적 정책은 북한의 위협을 대상으로 하여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미-중 간의 경쟁을 위한 봉쇄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기여를 미국이 노리는 측면이 강하지만, 실제적인 일본의 기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일본에 대한 위협이 미-일 동맹의 전제로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북한의 접근은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이 지역의 안보를 구상해 왔던 미국의 정책적 개입의 Nexus 를 근본적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CFR 의 Haass 가 우려했던 통일 후의 한반도의 정책적 향방에서 볼 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성공적인 접근과 문제 해결은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 한반도와 미국의 관계를 미국의 정책적, 전략적 안정성의 입장에서,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맺으며, 최근 미디어들은 북한의 대화공세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서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이 입장은 강화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그와 반대로 더욱 경직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회고해 보건대, 정부의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정책적 입장은 단순화되고 신축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2009년 부터 6자 회담을 거부하고 4차에 걸친 핵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돌파구를 마련할 의지나 자신감마저 상실한 상태이며, 북한과의 관계를 어떤 맥락에서 유지를 하고 그 관계를 끌고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목적과 방향을 유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북한과의 정책적 접근과 협의를 할 전략적 자산도 상실한 상태에서 미-북한 간의 협의가 시작되는 경우 어떤 위치를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당장 닥칠 것이다. 매스콤들은 우리가 주도를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으나 그 논리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변화를 채택할 용기와 그것을 끈기있게 추진해 나갈 강력한 의지가 아쉬운 지금의 상황에서 정책적 불모의 풍토만 탓할 수는 없지않은 가? 비핵화의 길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와 다른 것은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핵 무기의 폐기까지 실현을 하기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Threat Reduction 의 차원에서 구 소련의 연방국들이 보유하고 있던 핵 무기를 폐기하는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 처리의 방법, 기술, 자금은 미국이 지원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를 수반한다는 말이 있듯이 현재 한반도에는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화의 제의가 나오고 있다. 시간을 두고 재촉하는 북한의 제의에 대해 시간의 여유를 두고 대응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7월 초를 그 접촉의 시기로 제의를 하는 것이다. 통일의 문제는 어느 개인의 영욕의 대상이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민족의 염원을 담은 신성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국민의 경건하고 헌신적인 기여만이 필요할 뿐이다. 통일 문제가 나올 때 마다 거론되는 독일의 통일은 시각에 따라 여려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독일 통일의 4 주역들의 공통 분모는 한결같은 통일에의 헌신,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려는 확고한 의지의 실천이었고, 그 결과가 통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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